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최보람씨, 다국적 여성그룹 멤버로 수상 “동양인 여자 선입견 깨고 싶어”
“제 영어이름인 ‘시타’는 흡혈귀 소설에 나오는 여자 뱀파이어 이름이에요. 동양인 여자는 가녀리고 얌전하단 이미지를 깨고 싶었죠.”
한국인 최초로 라틴 그래미상을 수상한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최보람(미국명 시타 최·34·사진) 씨. 그는 20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시상식장에 (유명 일본계 DJ) 스티브 아오키를 빼곤 동양인이 저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16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18회 라틴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그룹 ‘플로르 드 톨로아체(Flor de Toloache)’의 멤버로서 무대에 올라 ‘최우수 란체로/마리아치 앨범’ 부문 트로피를 받았다. 라틴 그래미는 그래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리코딩예술과학아카데미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된 라틴계 음악 중에서 최고의 작품을 가리는 상이다.
서울 출신인 최 씨는 어떻게 멕시코 마리아치 밴드에 들어갔을까. 예원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에 건너간 그는 고교 2학년 때 음악 교육 명가인 뉴욕 맨해튼음대에 개교 이래 최연소 입학자가 됐다. 클래식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재즈 연주에 매료됐다. 재즈와 월드뮤직 쪽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2014년 ‘플로르…’에 합류했다.
최 씨의 수상과 축하공연 장면은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그는 “우리 그룹은 콜롬비아,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미국 등의 다양한 인종의 여성으로 구성돼 멕시코 전통음악을 재창조하고 있다”면서 “한국인 부모님은 제가 입는 마리아치 전통 의상을 보시고 신기해하시는데, 정작 멕시코 관객들은 공연 뒤 ‘당신, 멕시코인인가?’ 물어올 때가 있다”며 웃었다.
앞으로 그의 꿈엔 국악을 알리는 일도 있다. 그는 맨해튼 음대 졸업 뒤 서울대 국악과에서도 공부했고 사물놀이 김덕수 씨의 음악극에도 함께했다. 최 씨는 “중동과 라틴 음악, 국악을 접목한 ‘시타 최 그룹’은 물론 ‘플로르…’의 한국 공연도 내년에 계획하고 있다”면서 “인종과 문화에 대한 사회의 통념과 경계를 음악으로 넘어서고 싶다”고 했다.
한국인 연주자가 그래미 관련 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012년엔 재즈 보컬 신예원 씨가 라틴 그래미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연주자를 제외하면 음향엔지니어 황병준 씨가 2012년과 2016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이번 수상으로 최 씨에게는 향후 그래미와 라틴 그래미 투표권이 부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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