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완준]사드와 아라벨라의 동상이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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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관영 중국중앙(CC)TV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떠난 10일 밤 시사프로그램에서 트럼프 방중 최고의 인물을 선정했다. 주인공은 시진핑 국가주석도, 트럼프 대통령도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외손녀 아라벨라였다. 국민 앵커 바이옌쑹은 “트럼프 방중 최고의 인물에는 단지 하나의 답만이 있다”며 흥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부부의 딸인 아라벨라는 두 정상의 만찬장에 영상으로 등장해 익숙한 중국 노래를 불러 중국인들을 기쁘게 했다. 게스트로 나온 쑤거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원 원장은 “신(新)시대 외교에 따라 중미 최고 지도자의 현 세대에서 다음 세대까지 양국의 우의가 이어져 내려가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시대 외교는 시 주석이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내놓은 ‘신형국제관계’다. 쑤 원장은 “(중국) 문화의 매력”까지 거론하며 트럼프에게 2500억 달러의 투자 선물을 안긴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승자가 중국임을 역설했다. ‘미국 대통령 손녀도 중국 문화를 배운다. 시 주석은 그런 미국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과시하는 것이다.

사드 문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달 31일 한중관계 개선 의지를 양국이 발표한 날 청와대 관계자는 “사드는 봉인됐다. 앞으로 중국이 사드를 거론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 당국자들은 “중국이 사드 철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며 낙관론을 펴기도 했다.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시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보란 듯이 사드를 거론했다. “한국이 역사적 책임을 기초로 중한관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드 철수를 압박했다. 리커창 총리도 문 대통령에게 한중이 “사드의 단계적 처리에서 공통 인식에 도달했다. 한국이 성실히 계속 노력해 중한관계 발전의 장애를 깨끗이 제거하기 바란다”고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중국 외교부 관계자들을 취재하니 중국은 지난달 31일 한중 발표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3불(不) 표명을 사드 철수의 1단계로 인식하고 있었다. 3불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진하지 않으며 △사드 추가 배치는 없다는 것이다. 2단계는 군 채널 등 한중 협의를 통해 사드를 최종적으로 철수시키는 것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리 총리의 말처럼 이런 단계적 철수 해법에 한중이 공감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중국 측은 10월 31일 한중 발표문에도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며 ‘사드 철수의 단계적 해법’에 의문을 갖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측이 사드는 봉인됐다며 외교 성과를 알리고 있던 시간에 중국은 강 장관의 3불 표명을 첫 단추로 사드 철수를 위한 단계에 들어섰다고 자평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중 간에 이면 합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중국 입장에 따르면 사드는 봉인된 것도, 봉합된 것도 아니다. 한중관계 개선은 시 주석이 거둔 신시대 외교 성과 중 하나이자 사드 철수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윤활유 같은 것이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사드 합의는 시 주석이 국익을 양보하지 않았음을 자국민에게 선전할 수 있는 ‘아라벨라’가 될 수 있다. 다음 달 방중 정상회담에서는 사드가 거론되지 않는다 해도 중국이 사드 철수라는 목표를 버리지 않는 한 한중관계 개선에 계속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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