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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박용]한국 개들에게 미안해

입력 2017-10-30 03:00업데이트 2017-10-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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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 특파원
지난여름 복날 미국 뉴욕 맨해튼 번화가인 파크 애비뉴 한국 영사관 앞에서 곤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미국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한국의 개고기 유통을 멈춰 달라”며 끔찍한 사진이 실린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건물 앞에 나타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2018년 평창 올림픽 보이콧” 등을 주장하는 개고기 반대 전단지를 나눠 줬다. 영사관 직원들은 “매년 복날이 되면 반복되는 일”이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한국의 개고기 유통을 고발하는 ‘한국개(koreandogs.org)’ 홈페이지까지 운영하고 있다. 몇 년 전엔 한국에서 식용으로 팔려갈 뻔한 개가 구출돼 미국으로 입양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구출된 슬픈 눈의 누렁이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도착하는 장면은 미국 지상파 뉴스의 전파를 탔다. 누렁이의 ‘아메리칸 드림’을 보고 한국의 수많은 식용견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은 개에게 천당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이다. 복날을 위해 비참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식용견이 있는가 하면, 전용 미용실을 다니며 유기농 사료로 호의호식하는 애완견의 삶이 공존한다. 하지만 동물로서 개의 습성을 배려하지 못하면 개에겐 천국도 지옥처럼 느껴질 것이다.

미국에선 7000만 마리의 개가 3억2000만 명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만난 한 ‘도그 워커(개 산책시키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는 개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족처럼 대하면 된다.” 공원에는 많은 개들이 주인과 함께 산책하고 있었지만, 목줄 없는 개는 볼 수 없었다. 다른 사람과 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그게 가족과 같은 자신의 개를 보호하는 방법이라는 걸 주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개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크고 작은 약속이 많다. 목줄이나 배변 봉투는 기본이고, 공공장소엔 개가 들어갈 수 있는 곳과 시간이 정해져 있다. 아파트 같은 거주 공간은 애완동물에 대한 규정이 있다. 개를 키울 수 없는 곳, 고양이는 허용이 되는 곳, 애완동물은 아예 키울 수 없는 곳 등 사정도 제각각이다. 개도 가족의 일원이다.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려면 얼마의 돈을 내야 하는 아파트도 있다. 일종의 ‘개 월세’를 받는 셈이다. 개는 개다. 개에게 물리거나 떠밀려 넘어지는 사고, 다른 개를 무는 사고에 대한 책임은 주인에게 철저히 묻는다. 뉴욕에는 개 물림 사고 관련 소송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변호사도 있다.

제도가 마련돼 있고 주인들이 조심해도 개에게 물리는 사고가 미국에서 연간 450만 건 발생한다. 개와 공존하기 위한 준비가 덜 된 한국은 오죽할까. 한국은 인구 밀도가 세계적으로 높다. 도시화도 90% 이상 진척돼 있다. 가족 수가 줄어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빠르게 늘고 있다. 사람과 개의 거리가 점점 좁아지고, 개와 사람이 부닥칠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밑도 끝도 없는 착각은 주인과 이웃은 물론이고 가족과 같은 개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세상이 위험한 것은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방관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한국개 사이트는 식용견 금지를 촉구하며 이 글을 인용해 놨다. 최근 한국의 ‘무는 개 논란’에 빗대 살짝 바꾸면 ‘개가 위험한 것은 방관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 아닐까. 한국의 개들에게 또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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