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선동하거나 호소하거나… 세상을 바꾼 ‘말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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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 세계사/앤드루 버넷 엮음·정미나 옮김/436쪽·2만1000원·휴머니스트

평화를 호소한 간디-마틴 루서 킹부터 괴벨스-후세인의 선동적 연설까지… 현대사의 기억할만한 연설문 50편 선별

① 췌장암 판정을 받고 나서 2년 뒤인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연설한 스티브 잡스. 사진 출처 stanford.edu
② 탈레반 총격으로 입은 부상에서 회복된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2013년 7월 12일 유엔본부 연설에서 “모든 인간에게 교육 받을 권리를 달라”고 호소했다. 사진 출처 youtube.com
③ 미군의 이라크 공습 한 달 전인 2003년 2월 한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승리를 장담한 사담 후세인.
① 췌장암 판정을 받고 나서 2년 뒤인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연설한 스티브 잡스. 사진 출처 stanford.edu ② 탈레반 총격으로 입은 부상에서 회복된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2013년 7월 12일 유엔본부 연설에서 “모든 인간에게 교육 받을 권리를 달라”고 호소했다. 사진 출처 youtube.com ③ 미군의 이라크 공습 한 달 전인 2003년 2월 한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승리를 장담한 사담 후세인.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어수선할 때, 바로 그때 남성이든 여성이든 진정한 영웅이 나타납니다. 여성을 나약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우리 국민은 남성과 여성 모두 똑같은 결의와 정신력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만 읽으면 건전한 양성평등 의식을 지닌 정치인의 연설로 여겨진다. 하지만 1943년 2월 18일 독일 베를린의 군중 앞에 나서 이 말을 한 주인공은 나치 정권의 국민계몽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다. 이어진 발언은 아래와 같다.

“우리 국민은 어떤 일이 닥치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총통 각하는 명령을 내렸고 우리는 따를 것입니다. 국가적 성찰과 숙고의 시간을 지나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흔들림 없는 확고한 마음으로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폭풍 같은 청중의 박수갈채에 마지막 문장이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는 설명이 섬뜩하다. 책의 원제는 ‘50 Speeches That Made the Modern World’.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저널리스트인 엮은이가 현대사에서 되새겨 기억할 만한 연설문 50편을 선별해 묶었다.

20세기에 접어든 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 테러의 시대를 거치며 반전, 독립, 차별 철폐 등을 주장한 다양한 연설이 나왔다. 책의 특징은 간디, 아인슈타인, 마틴 루서 킹 등 긍정적 평가를 받은 명사들뿐 아니라 무솔리니, 오사마 빈 라덴, 사담 후세인 등 문제적 인물들의 선동적 연설도 함께 소개한 점이다.

빌 클린턴의 연설로는 1998년 9월 11일의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 대국민 사과문을 골랐다. 엮은이는 “곤란한 상황을 유들유들 넘기기에 뛰어났던 클린턴은 이 연설에서 유독 어눌한 언변을 보였다. 냉소가들은 ‘참회하는 척하는 쇼’라고 지적했다”고 평했다. “공명정대하게 정의를 좇을 테니 의심 없이 나를 믿어 달라”고 호소한 1973년 사임 한 해 전 리처드 닉슨의 연설은 묘한 기시감을 일으킨다.

씁쓸함 없이 읽히는 부분은 거창한 선언이나 열띤 선동이 아닌, 소박한 어조로 차분하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는 내용의 연설들이다. 사상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2013년 7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 연설, 유튜브 인기 동영상인 스티브 잡스의 2005년 6월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은 여러 번 접해 익숙함에도 여전한 감흥을 안긴다.

“진정한 만족감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계속 찾아보세요. 적당히 안주하지 마세요. 찾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늘 갈망하며 늘 무모하길. 그동안 저는 죽 그렇게 살길 바랐습니다. 여러분 역시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스피치 세계사#앤드루 버넷#정미나#요제프 괴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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