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대가’ 하서 김인후 선생 추향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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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유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의 학문적 위업을 기리는 추향제가 15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에서 열렸다. 장성=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조선 중기 유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의 학문적 위업을 기리는 추향제가 15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에서 열렸다. 장성=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조선시대 성리학 대가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1510∼1560) 선생을 기리는 추향제(秋享祭)가 15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사적 제242호)에서 열렸다. 이날 추향제에는 정운염 전북 유림 대표, 김광수 경남 거창 유림 대표, 정환담 전남 보성 대계서원 원장, 김달수 울산 김씨 대종회장, 유두석 장성군수와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추향제는 제물을 바치는 봉진례, 비단을 바치는 전폐례, 술잔을 바치는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순서로 진행됐다.

초헌관을 맡은 정운염 대표는 ‘하서 김인후 선생은 동방의 주돈이(周敦이), 호남의 공자’를 주제로 강론했다.

정 대표는 “조선시대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선비 18명을 ‘동국 18명현’이라 하는데 하서 선생 배향에 반대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며 “정조대왕이 배향을 주도한 데다 선생의 학문과 행적에 흠이 거의 없고 호남 인사로는 유일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서는 퇴계 이황(1501∼1570)과 쌍벽을 이루는 조선 중기 유학자로 1540년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543년 홍문관 박사 겸 부수찬이 돼 세자(인종)를 가르쳤다. 인종 서거 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 장성으로 내려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필암서원은 호남 유림이 하서와 제자 고암 양자징(1523∼1594)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선조 때 창건한 사우(祠宇)로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

추향제 후 ‘하서 추모 유적지 탐방 글짓기 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김승주 양(12·장성진원초 5학년)이 수상작 ‘우리 고장 장성의 자랑스러운 유적지를 찾아서’를 영전 앞에서 봉독했다.
 
장성=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조선시대 성리학 대가#하서 김인후 선생 추향제#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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