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위기를 견뎌온 삶의 내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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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뿌리

생존을 위해 정교하게 뻗어나가는 나무의 뿌리.
생존을 위해 정교하게 뻗어나가는 나무의 뿌리.
어떤 생명체든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위기를 만난다. 그런데 동물은 위기를 맞으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피하지만, 나무는 다른 곳으로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나무들은 뿌리를 통해 생존을 도모한다. 하지만 나무들마다 뿌리를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예컨대 추운 곳에 사는 소나뭇과의 늘푸른 바늘잎나무 소나무와 더운 곳에 사는 뽕나뭇과의 늘푸른 큰 잎나무 용수(榕樹)는 뿌리를 만드는 방식이 아주 다르다. 소나무는 주요 뿌리를 지표면에서 깊게 내리는 직근성인 반면, 용수는 주요 뿌리를 지표면에서 옆으로 내리는 천근성이다. 직근성이든 천근성이든 모두 어떤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기 위한 나무들의 생존 전략이다.

나무 뿌리를 보면 살아온 대부분의 과정을 알 수 있다. 나무의 뿌리는 주변에 살고 있는 가로수나 인근 산의 나무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은 대개 뿌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산을 자주 찾는 사람들도 산길을 가다가 자주 뿌리를 밟지만 뿌리를 관찰하지 않는다. 만약 한 번이라도 비바람에 흙이 씻겨 밖으로 드러난 나무의 뿌리를 관찰한다면 놀라운 비밀을 발견할 것이다.

나무는 처한 조건에 따라 아주 정교하게 뿌리를 만든다. 예컨대 절개지에 삶의 똬리를 튼 나무들은 균형을 잡기 위해 절개지 반대편으로 굵은 뿌리를 만든 후 다시 다른 뿌리를 만들어 중심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묶는다. 뿌리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 모든 나무들이 이런 방식으로 위기에 대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무의 뿌리는 땅속의 영양분을 줄기로 옮기는 기초 작업임과 동시에 균형 잡힌 삶을 위한 필사의 노력이다. 나무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도로를 새로 만들거나 정비하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무의 뿌리를 싹둑 잘라버린다. 나는 간혹 길을 가다가 잘린 뿌리를 발견하면 측은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서 뿌리가 잘린 나무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다. 측은한 마음은 춘추 말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仁)을 실천할 수 있는 단서이자 생명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생태의식이다.

뿌리는 근본이다. 근본은 삶을 지탱하는 핵심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은 아무 이유도 없이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것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나무 뿌리#용수#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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