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일자리 파이, 나누지 말고 키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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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경제부 차장
김유영 경제부 차장
최근 중국 대도시의 한 식당에서 밥값을 내려다 당황한 적이 있다. 계산대엔 ‘No Cash’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현금만 받는 식당은 봤어도 현금을 거부하는 식당은 없는데…. 알고 보니 이 식당은 모바일 결제만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히 동행한 중국인 친구가 스마트폰을 꺼내 우리의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에 있는 QR코드를 계산대에 대고 결제를 마쳤다. 친구는 “요새 지갑 없이는 다녀도 위챗 없이는 못 다닌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쇼핑과 공과금 납부, 택시 호출 등은 물론이고 대출이나 펀드 투자도 위챗으로 가능하다. 위챗에 충전한 돈으로 증권사 펀드를 골라 바로 투자할 수 있다. 단 1위안만으로도 가능해 인기가 높다.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평처럼 병원 의사에 대한 리뷰 등을 확인하고 병원 예약을 할 수도 있다. 위챗 사용자는 9억 명에 이르고 위챗을 운영하는 중국의 텐센트는 시가총액 세계 10위의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위챗의 성장엔 중국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한몫했다. 2010년 비(非)금융회사의 온라인 결제 허용을 시작으로 은행이 독점했던 대출업 진입 규제 완화(2012년), 비금융회사의 펀드 판매 허용(2013년), 비금융회사의 무점포 온라인은행 허용(2014년) 등이 잇따랐다. 그 덕분에 중국은 지난해 4444억 달러(약 500조 원)의 핀테크 거래액을 올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핀테크 강국이 됐다. 위챗의 경제적 파급력도 크다. 중국 정보통신학회에 따르면 위챗으로 직간접적으로 창출된 일자리는 지난해 1881만 개에 이른다. 전년보다 7.7% 늘어난 수준이다.

위챗 이야기는 일자리에 사활을 걸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시사점을 준다. 문 정부는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1호 업무 지시로 내린 뒤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고 일자리 100일 플랜을 수립하는 등 다양한 일자리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2%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일자리 숫자에 집착하는 모습은 아쉽다. 이런 식이라면 극단적으로 말해 농업이 효과적일 수 있다. 농업의 취업유발계수(31.2명·10억 원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취업 인원)가 산술적으로 가장 높다. 농업의 특성상 노동집약적인 구조를 띠고 있어서다.

새 정부가 애써야 할 건 일자리 수보다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춘 혁신적인 일자리 창출이어야 한다. 그런 일자리는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활발한 국내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국내에서도 위챗까지는 아니지만 규제 완화가 큰 성공을 낳은 사례가 있다. 바로 화장품 업계다. 2012년 정부는 화장품 제조 시 허용 원료만 쓰도록 하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금지 원료를 제외한 모든 원료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꿨다. 이후 화장품 산업은 성장을 거듭하면서 ‘화장품 한류’가 생겨났다. 법 개정 이전 1조 원을 밑돌던 화장품 수출액은 지난해 5조 원에 육박할 정도가 됐다.

일자리 창출의 초점을 산업 경쟁력 강화에 맞춘다면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자동화가 가속화되고 국내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전체 일자리 수가 줄어드는 걸 바꾸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을 일구고 전체 ‘일자리 파이’를 키워야 한다. 세금을 투입해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기존 파이 나누기에만 머물러선 한계가 있다. 보다 긴 안목에서 일자리 대책을 추진하길 당부한다.

김유영 경제부 차장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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