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대선… 얼굴 감춘 폴리페서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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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캠프측 “참여교수 2260명”… 이름 밝힌 교수는 123명


“캠프 전체회의에 어림잡아 교수 200명이 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너도나도 ‘내 이름은 노출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걸 보고 더 놀랐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대선 캠프 자문위원인 한 국립대 A 교수는 최근 열린 자문위원 전체회의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A 교수처럼 대선 캠프에 참여하면서도 공식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교수가 18대 대선 때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동아일보가 19대 대선 주자 6명(민주당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의 캠프와 산하 자문조직 등에서 활동하는 교수를 조사(캠프 발표 및 언론 보도 기준)한 결과다. 31일 각 캠프가 공개적으로 밝힌 참여 교수는 줄잡아 2260여 명이었지만 이름을 밝힌 교수는 120여 명뿐이다. ‘두더지페서(두더지+프로페서·비공개로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교수)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온다. 39일 남은 ‘장미 대선’의 폴리페서들은 어떤지 들여다봤다.

19대 대선은 가성비 ‘甲’


“지난 대선 때 같으면 청와대 입성을 위해 1년을 공들여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길어야 3개월이다.”

최근 한 대선 주자 캠프에 자문위원으로 합류한 서울 사립대 B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자기 ‘장’이 선 것이 오히려 교수들에게 더 좋은 기회가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선거일까지 준비 기간이 짧아 ‘투자 대비 효율’이 높다는 것이다. 폴리페서 논란에도 교수들이 대거 각 후보의 캠프로 몰리는 이유다.

캠프에 투신하고도 대부분 비공개를 요구한다. 자신이 도운 후보가 떨어졌을 때 불이익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 등 교수 출신 인사들의 연이은 추락의 영향이 크다.

2012년 대선 때만 해도 캠프 참여 교수들은 선거일까지 1년 이상 후보를 도왔다. 원치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은 2010년 12월 발족했다. 이 연구원에 참여한 안 전 수석은 2007년 대선 때부터 박 전 대통령의 공부 모임 멤버였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경선 일정까지 길어야 2, 3개월만 투자하면 학문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하다”는 것. 노력을 적게 들여도 장차관이나 청와대 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비공개 활동 중인 다른 사립대 C 교수는 각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 추이를 체크하는 게 일과다. 그런데 2월 들어 같은 당 안희정 충남도지사 지지율이 20%를 넘자 안 지사 캠프의 문을 몰래 두드렸다. 하지만 안 지사의 지지율이 주춤해지자 문 후보 캠프에 남기로 했다.

캠프에 발을 담그면 선거 후 공직에 가지 않더라도 캠프 인맥을 통해 국고보조 연구사업 선정 등에서 유리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립대 E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었듯 학계에서도 정부에 비판적이면 미운털이 박혀 연구비 신청을 할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실명을 밝히지 않기도 한다”고 전했다.

전체 교수의 3%가 캠프행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대학·대학원 교수는 7만5479명이다. 주요 대선 주자 캠프에 몸담은 교수 2260명은 전체 교수의 3% 수준이다. 2260명 가운데 자신의 실명을 떳떳이 공개하고 활동하는 교수는 123명으로 5% 정도다. 나머지 95%는 두더지페서인 셈이다.

2012년 대선의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교수 550여 명 가운데 433명이 이름을 드러낸 것과 대조적이다. 당시 박 후보 캠프는 대선 2개월 전 교수 193명을 공개했다. 문 후보 캠프도 교수 181명의 이름을 밝혔다. 안 후보 캠프도 자문 교수 150명 가운데 59명을 공개했다.

이번 대선에서 문 후보 캠프는 참여 교수가 1000명을 넘지만 이름을 잘 공개하지 않는다. 문 후보 측은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에 참여하는 교수 1000명을 비롯해 대선 캠프인 ‘더문캠’ 및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400명을 합치면 1400여 명이 돕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캠프 및 언론을 통해 실명이 드러난 교수는 주요 직책을 맡은 51명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측은 싱크탱크 ‘전문가광장’에 참여한 교수 560여 명 중 주요 직책을 맡은 35명만 공개했다. 안 지사 측은 “핵심 자문그룹 ‘홈닥터’의 50명을 포함한 자문 교수 100명이 있다”고 밝혔지만 이름이 알려진 교수는 16명뿐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남도지사 측은 “경남지역 교수 중심으로 150여 명이 정책 자문을 담당한다”고 밝혔다가 “숫자와 명단 모두 비공개”라고 입장을 바꿨다. 바른정당 대선 후보인 유승민 캠프 측도 100여 명 가운데 5명만 알려졌다.

대세 좇아 옮기는 ‘메뚜기’ 행태도

캠프를 바꿔 탄 교수들도 눈에 띈다. 해바라기처럼 대세를 좇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불린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지난달 15일 문재인 캠프의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위원장으로 합류했다.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을 맡았던 김 교수는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박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자문을 담당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집권 후 배제돼 정부 핵심 요직은 맡지 못했다. 김 교수와 2007년부터 공부모임을 같이 한 안 전 수석은 오히려 ‘한 길’을 걸은 폴리페서다.

김 교수와 함께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캠프를 갈아탔다. 김상조 교수는 2015년부터 최근까지 역시 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의 공부모임 ‘해와 달’ 멤버였다. 김호기 교수는 2007년에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캠프의 핵심 역할을 하다가 18대 대선 때는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 정책 자문에 응했다. 표학길 서울대 교수는 2007년 박근혜, 2008년 이회창 같은 보수진영 인사를 돕다가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 노선을 바꿨다.

“청와대에 들어가겠다”며 학교 수업을 등한시하는 경우도 많다. 교수가 정치권으로 진출하면 대학원생은 지도교수를 잃게 되거나 학기 중 갑작스럽게 시간강사 수업으로 대체되는 등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다.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수석비서관을 지낸 교수 출신 인사는 선거철이 아닌 평소에도 학기 중 정치 일정 때문에 수업을 등한시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일주일 수업 두 시간 중 한 번은 조별활동만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주장한 ‘통일은 대박이다’를 주제로 글짓기 숙제를 내주며 호의적인 평가를 강요하기도 했다. 이 교수의 수업을 들은 한 학생(25)은 “학생들 사이에서 ‘수업을 날로 먹는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전했다.

한 지방대에선 총선에 6번 나갔다가 번번이 낙방한 교수가 매번 돌아와 수업을 맡기도 했다. 1996년 15대 총선 때부터 지역구 의원에 도전하기 시작한 F 교수는 지난해 또 총선에 나가면서 학생들에게 지탄을 받자 휴직했다. 4·13총선에서 낙방한 교수는 올해 다시 대학원과 학부 수업을 맡았다.

최고야 best@donga.com·백승우·황하람 기자
#폴리페서#장미대선#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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