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에 그림 전시회… 교육열 불태우는 만학도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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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까지 광주 일곡도서관서 전시, 크레파스로 4년간 500여 장 그려
고흥 50, 60대 주민 10명 고교 입학… 신입생 부족 폐교 위기 학교 살려

‘91세 김순녀 할머니의 그림여행’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광주 북구 일곡도서관에서 김 씨가 스케치북을 들고 맑게 웃고 있다. 일곡도서관 제공
‘91세 김순녀 할머니의 그림여행’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광주 북구 일곡도서관에서 김 씨가 스케치북을 들고 맑게 웃고 있다. 일곡도서관 제공
뒤늦게 뛰어든 배움의 길이지만 청년 못지않게 열정을 불태우는 노인들이 있다. 구순의 나이에 첫 그림 전시회를 열고 나란히 고교에 입학한 노부부도 있다.

김순녀 씨(91·여)는 이달 31일까지 광주 북구 일곡도서관 로비와 어린이실에서 그림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 명칭은 ‘91세 김순녀 할머니의 그림여행’이다. 김 씨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셋째 사위인 이성원 씨(65)는 당시 김 씨에게 ‘평생 사시면서 하지 못한 이루지 못한 것이 뭐냐’고 물었다. 이에 김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과 보통학교 다닐 때 그림을 잘 그렸는데 계속 그리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했다.

이 씨는 곧바로 김 씨에게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사다줬다. 김 씨는 크레파스 선물을 받자마자 집에 있는 책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이후에는 집 근처 일곡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그림을 채워갔다. 이렇게 4년 동안 그린 그림은 스케치북 30여 권(500여 장)에 이른다.

김 씨가 그림 소재로 좋아하는 건 옛날이야기다. 콩쥐팥쥐를 비롯해 율곡 이이 선생, 까치와 까마귀 등 동화·역사이야기가 선호하는 소재다. 김 씨는 지난해부터 손녀딸이 사다준 일기장에 그림일기를 쓰고 있다.

김 씨의 스케치북을 발견한 사람은 일곡도서관에 근무하는 이춘숙 씨(58·여)다. 그는 김 씨가 도서관을 방문해 항상 2시간 넘게 머물며 책을 고르는 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스케치북의 존재를 알게 돼 전시회를 마련했다. 김 씨는 “난생 처음 열게 된 전시회에 시민들과 유치원생, 초중고교생들이 그림을 보러 와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남 고흥군 도덕면에 사는 정흥술 씨(67)와 부인 선춘봉 씨(58)는 매일 아침 차를 타고 인근 과역면 영주고등학교에 등교한다. 이 부부는 영주고 신입생으로 입학해 공부하며 논밭 3만 m²에 농사를 짓고 있다.

영주고는 올해 입학할 신입생이 부족해 문을 닫을 뻔했지만 정 씨 부부 등 50, 60대 주민 10명이 입학해 폐교 위기를 넘겼다. 정 씨 부부는 중학교 학력인정과정을 운영하는 고흥평생교육관을 졸업한 뒤 폐교 위기에 놓인 영주고에 흔쾌히 입학했다. 정 씨는 “처음에는 손자뻘 되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걱정했는데 선생님들 배려 덕분에 잘 적응하고 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면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광주복지재단 빛고을노인건강타운 부부 댄스반 8쌍은 레크리에이션 3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은 2년 동안 교육을 받고 실기시험을 통과해야 취득할 수 있다. 기세훈 씨(76)와 부인 송경자 씨(76)는 “도전하는 즐거움은 나이를 잊게 했고 왈츠를 통해 부부 관계도 돈독해졌다”고 했다.

광주 남구 노대동에 2009년 문을 연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은 60세 이상 노인 회원이 6만7000명이다.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은 지난해 시니어대학 과정을 통해 구연동화 2급, 오카리나 1·2급, 웃음치료사 1급 등 5개 과정을 운영해 노인 65명이 자격을 취득했다. 문혜옥 빛고을노인건강타운 본부장은 “자격을 취득하신 어르신들은 다양한 나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만학도#광주 일곡도서관#91세 김순녀 할머니의 그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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