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숲속에서 ‘소리’를 짓는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국내 유일 파이프오르간 빌더 안자헌 씨

파이프오르간 빌더 안자헌 씨는 파이프의 숲속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오르간의 매력에 빠져 9년간 독일에서 유학했다. 그는 “파이프오르간은 피아노보다 건반이 적지만, 음색 선택에 따라 음역이 넓어진다”며 “모든 악기 중에서 가장 음역대가 풍부하고 수백 가지의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파이프오르간 빌더 안자헌 씨는 파이프의 숲속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오르간의 매력에 빠져 9년간 독일에서 유학했다. 그는 “파이프오르간은 피아노보다 건반이 적지만, 음색 선택에 따라 음역이 넓어진다”며 “모든 악기 중에서 가장 음역대가 풍부하고 수백 가지의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통로. 사다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자 통로는 더욱 좁아졌다. 얼마 뒤 답답함마저 느껴졌다. 주위에는 서로 다른 모양과 길이의 수많은 파이프가 솟아나 있었다. 커다란 공장 내부에 우두커니 선 느낌이었다.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함부로 건들면 큰일 납니다.”

제작부터 설치까지 2년 이상 걸린 롯데콘서트홀의 파이프오르간. 동아일보DB
제작부터 설치까지 2년 이상 걸린 롯데콘서트홀의 파이프오르간. 동아일보DB
안자헌 파이프오르간 빌더(58)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최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은 지난해 제작된 뒤 처음으로 정기 관리·점검을 받았다. 오르간은 높이 12m에 가로 12m, 세로 3m로 3, 4층 규모의 아파트처럼 거대하다. 겉과 달리 오르간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하고 좁다. 안 빌더 주위에는 많은 연장이 펼쳐져 있었다. 펜치, 드라이버, 망치, 접착제 등 흡사 목공 기술자 같았다. 오르간 조율을 보러 왔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파이프오르간에는 조율사와 제작자의 구분이 없어요. 빌더(builder·짓는 사람)라는 명칭 그대로 제작도 할 줄 알아야 해요.”

그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거의 유일한 파이프오르간 제작 마이스터다. 그 전 단계인 게젤레(기능사) 단계의 빌더는 국내에 서너 명 있다. 국내에는 롯데콘서트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비롯해 150여 개 공연장과 교회, 성당에 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그는 이 중 40여 개의 오르간을 전담 관리하고 있고, 설치도 도왔다.

파이프오르간의 관리·점검엔 꽤 많은 품이 들어간다. 전기, 전자, 기계, 목공, 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가 얽혀 있다. 혼자 작업하기는 힘들다. 그도 아내와 함께 작업한다. 아내가 밖에서 오르간을 조작하면, 그는 안에서 소리를 듣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다.

“가장 오래된 파이프오르간은 600년이 넘었지만 보통은 수명이 200년 정도입니다. 그것도 정기적으로 관리해야 오래 사용할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온도, 습도 등으로 변형이 생기고 고장이 날 수 있죠.”

그는 △연주대의 각 기능 점검과 수리 △바람 공급대의 바람 압력 점검 △건반과 스톱(음색조정 장치) 액션 점검 및 조정 △각 음색의 조율 상태 점검 및 조율 △각 음색의 보이싱(음색 조율) 상태 점검 등의 작업을 한다.

“파이프가 제대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보이싱이 가장 중요해요. 파이프 입 부분의 넓이, 높이, 바람 양 등을 조절해 소리를 조정해요. 3∼4m의 파이프를 들어 올리기도 합니다.”

점검 과정은 커다란 배의 엔진을 점검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3층 높이의 오르간 내부를 수십 가지의 연장을 가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돌아다닌다.

“롯데콘서트홀은 내부가 넓은 편이죠. 규모가 작을 때는 기어 다닙니다. 먼지를 뒤집어쓸 때도 많죠.”

외부에서 듣는 파이프오르간의 음색은 웅장하고 크다. 5000여 개의 파이프에서 빚어지는 수백, 수천의 음색은 듣는 이를 압도한다.

“안에서 2시간 정도 있으면 귀가 아파요. 귀마개를 꽂고 작업하는데 오래 하다 보니 이제 작은 음은 잘 들리지 않아요. TV를 볼 때도 음량을 크게 하고 들어요. 이게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지만 훈장이기도 해요.”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파이프오르간 빌더#안자헌#파이프오르간#롯데콘서트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