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韓日 핵무장 허용’ 언급한 美, 우리는 준비돼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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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8일 “북핵은 임박한 위협인 만큼 상황 전개에 따라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허용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방문을 마치고 중국으로 가는 길에 기내 인터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술핵무기의 한국 재배치 검토에 이어 독자적 핵무장까지 허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 대선 과정에서 한일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대응 방식도 ‘핵 없는 세상’을 추구해 온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얼마나 다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한일 핵무장은 불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이) 바뀐 것은 없다. 우리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이다”라는 전제 아래 조심스럽게 밝힌 내용이다. 하지만 그 발언에는 핵무기에는 핵무기로 대응해야 할 만큼 북핵이 ‘임박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긴박한 상황 인식이 담겨 있다.

틸러슨 장관은 중국을 방문해서도 북한의 핵 포기 없이 대화는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중국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내세우며 ‘3자 회담→6자 회담→북-미 담판’ 수순을 제시했다. 이런 미중 간 입장차, 특히 어정쩡한 중국의 태도는 김정은 정권의 도발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북한은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 맞춰 18일 ‘새형 대출력 발동기(신형 고출력 로켓 엔진)’ 분사 시험을 했다. 중국이 북한을 두둔하는 동안 김정은은 핵탄두를 미국 본토까지 날려 보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에 더욱 다가가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은 수년간 미국을 가지고 놀았는데도 중국은 도움을 안 줬다”고 불만을 터뜨렸지만, 정작 북한은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가지고 놀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이 비핵화의 족쇄를 풀고 핵무장 길을 열어줘도 찬반으로 갈려 시끄러울 게 뻔하다. 특히 5·9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미국이 핵무장을 용인하는데도 중국을 의식해 반대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틸러슨 장관은 일본을 ‘가장 중요한 동맹국’으로 규정하면서도 한국은 ‘하나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부르며 한국의 중요도를 낮춰 봤다. 이미 핵 재처리 시설을 갖춘 일본은 결단만 하면 단기간에 핵무기 개발이 가능한 ‘잠재적 핵보유국’이다. 이런 일본의 핵무장을 우리는 지켜만 봐야 하는 때가 온다면 나라 꼴이 우스울 것이다.
#북한#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북핵#새형 대출력 발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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