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율곡 이이의 어머니’ 아닌 인간 사임당을 만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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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이순원 지음/448쪽·1만6000원/노란잠수함

 얼마 전 인터넷에선 때아닌 ‘신사임당’ 논쟁이 벌어졌다.

 “신사임당이 율곡을 낳기 전 양육비부터 걱정했다면 위대한 두 모자는 역사상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란 출산 장려 공익광고 때문이다. 이 광고를 두고 “사임당은 당시 저명한 조선시대 선비의 둘째 딸로 양육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역사를 모르고 만든 광고”라는 반박이 이어졌다.

 소설 ‘사임당’은 ‘사임당처럼 많이 알려진 인물도 없고 사임당만큼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현모양처’ ‘교육의 어머니’로 왜곡돼 전해져 온 사임당의 실제 모습을 담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학술책이 아니라 팩트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어서 읽는 맛도 있다.

 적잖은 이들이 사임당은 날 때부터 현모양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겐 손녀들이 차별 없이 교육받길 바라며 천자문을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써 책을 만들어 준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또 딸에게는 이름도 주지 않던 시대, 아들딸 구별 없이 재산을 나누고 남매가 함께 제사를 모시도록 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를 둘러싼 가정환경이 당대 여성들과 다른 삶을 걷도록 만든 것이다. 그렇게 자란 사임당은 성인이 돼서도 스스로 자신의 당호를 짓고, 담장 밖으로 나가 형형색색의 그림을 그리며 재능을 마음껏 뽐냈다. 굳이 ‘율곡 이이의 어머니’가 아니었어도 여성으로서 충분히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것이다.

 책은 동인문학상부터 최근 동리문학상까지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순원 씨가 썼다. 문헌을 뒤지고 강릉 산천을 직접 걸으며 찾아낸 역사적 사실로 사임당의 삶을 다시 비춘다. 사임당의 본명으로 알려진 ‘신인선(申仁善)’을 둘러싼 논란부터, 후대에 ‘현모’로 알려졌지만 정작 자녀들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눈감았다는 사실 등을 언급하며 그간 왜곡된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조목조목 짚는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율곡 이이의 어머니’는 점차 흐릿해지고, 인간 사임당이 보이기 시작한다.

장선희기자 sun10@donga.com
#사임당#이순원#신사임당#율곡 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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