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독서 계획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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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맹세하여 시경, 서경, 예기, 춘추전을 차례로 3년 동안 습득하기로 하였다.’ 보물 제1411호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 새겨진 내용의 일부다. 신라 진흥왕 또는 진평왕 때 화랑으로 추정되는 두 젊은이가 학문을 닦아 나라를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했다. 3년 동안 경서 4종을 습득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임신서기석은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독서계획이자 독서문화유산이다.

 어떤 책들을 어떤 순서로 얼마 동안 읽겠다는 게 독서계획의 기본이다. 주자(朱子·1130∼1200)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순으로 사서(四書)를 읽을 것을 강조했다. 성혼(成渾·1535∼1598)은 손아래 동서 강종경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이 맡아 기른 강종경의 아들 강진승에게 권면하였다. “책을 읽을 때에는 엄밀히 과정(課程)을 정하여 익숙히 읽고 정밀하게 생각하며 간절하게 체득하라.”

 미국의 작가이자 비평가 클리프턴 패디먼은 18∼81세 독자를 염두에 두고 ‘평생독서계획’(이종인 옮김)을 펴냈다. 패디먼은 고전 명저를 중심으로 저자 133명의 책을 소개, 논평하면서 독서와 삶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는 것, 자신의 경력을 쌓는 것, 가정을 꾸리는 것 등과 대등한 행위다. 이 책들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길동무이다.’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친 근대 중국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는 청년들을 위한 독서계획으로 ‘독서분월과정(讀書分月課程)’을 만들었다(‘중국고전학입문’·이계주 옮김). 아침에는 유교 경서, 낮에는 사상, 저녁에는 역사, 밤에는 문학을 읽도록 짜인 빡빡한 계획이다. 량치차오는 서양 학문을 배우러 유학 떠날 학생들이 이를 통하여 중국의 전통 교양을 철저히 익히기를 바랐다.

  ‘평소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여 새해 설계에 반드시 독서를 먼저 꼽아 놓고도 제대로 실천해본 적이 거의 없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책방에 가서 읽을 만한 책을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해서 읽으려는 의욕을 한층 북돋아 볼까 한다.’

 1959년 1월 8일자 동아일보 독자투고란에서 한 주부가 밝힌 결심이다. 읽을 만한 책도 훨씬 더 많아지고 그런 책을 찾아내기도 무척 편리해진 요즘이다. 새해면 늦다. 바야흐로 한 해의 독서생활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계획을 짤 때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신미년#임신서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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