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카페]혐한시위에 맞선 재일동포와 日 시민사회 투쟁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헤이트데모가 멈춘 거리

 “시위 중단이다!”

 6월 5일. 일본 가나가와(神奈川) 현 가와사키(川崎) 시 거리에선 1000명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울먹거리며 끌어안은 이들에게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다. 2012년 혐한시위 본격화 후 시민들이 처음 시위를 취소시킨 역사적 순간이었다.

 9월에 출간된 ‘헤이트데모(혐한시위)가 멈춘 거리’(사진)는 코리아타운인 가와사키 시 사쿠라모토(櫻本)를 지키기 위한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사회의 투쟁을 다룬 책이다. 지역지 가나가와신문 취재팀이 전말을 지켜보며 밀착 취재한 내용을 생생하게 담았다.

 수도권 공업도시 가와사키에서 혐한시위가 시작된 것은 2013년 5월부터다. 식민지 시절 한반도에서 건너온 이들이 모인 코리아타운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지역의 교민들은 1980년대 지문 날인 거부 운동 등 재일동포 인권 운동을 이끌어 왔다. 그 덕분에 다른 지역처럼 이름을 감추지 않으며, 지역 학교에선 전교생이 풍물놀이를 즐긴다.

 역 앞에서 진행되던 혐한시위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시위대가 코리아타운 진입을 시도하며 양상이 달라졌다. 시위대는 대낮에 ‘조선인을 죽이자’고 소리치며 행진했고 경찰은 ‘신고된 시위’라는 이유로 이들을 보호했다. 울면서 이들을 가로막던 주민들이 거꾸로 제지를 받고 밀려났다. 코리아타운 아이들은 ‘경찰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되자 지역 다문화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최강이자 씨(43)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섰다. 시에서 “시위를 막을 근거 법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자 단체를 조직하고 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최 씨는 3월 국회에 출석해 “사쿠라모토는 일본인, 재일동포, 필리핀인 등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풍요로움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지내던 곳”이라고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얼굴이 알려진 최 씨에게 협박이 이어졌다. 그러나 최 씨는 굴하지 않았다. 인권 변호사, 시민운동 활동가 등이 가세해 ‘혐한시위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여론을 만들었고 5월 말 드디어 혐한시위 규제법이 만들어졌다.

 법이 통과된 뒤에도 혐한세력은 코리아타운을 향해 행진하겠다며 6월 5일 시위를 예고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미 바뀐 다음이었다. 시 당국은 공원 사용을 불허했고, 법원은 코리아타운 인근 데모를 금지했다. 하지만 당일에 모인 시위대 60여 명은 어떻게든 시위를 강행하려 했다. 그러자 이들에게 반대하는 일명 ‘카운터 시위대’와 주민들이 출발을 막았다. 경찰은 반대하는 이들을 밀어내 달라는 시위대에 ‘이것이 국민의 여론’이라며 냉담한 태도를 보였고 결국 시위는 무산됐다.

 집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시바시 가쿠(石橋學·45) 가나가와신문 디지털편집부 편집위원은 책에서 ‘혐한시위 방치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증오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헤이트데모가 멈춘 거리#재일동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