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런 일방적 총리 지명으로는 “下野” 외침 못 막는다

동아일보 입력 2016-11-03 00:00수정 2016-11-0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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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김병준 국무총리, 임종룡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후보자 지명을 전격 발표했다. 청와대는 “정치권이 요구하는 거국중립내각 취지를 살리기 위해 참여정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 교수를 책임총리로 발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 개각 발표에 야 3당은 “일방통행 국정운영 스타일을 못 버렸다”며 국회 인사청문회 보이콧을 예고했다. 대통령 하야(下野)라는 말을 쓰기를 자제했던 야권 대선 주자들도 ‘대통령 퇴임’을 들고 나왔다. ‘개각 카드’로 국면 전환은커녕 ‘하야 정국’의 불이 붙는 형국이다.

 시국 상황의 엄중함을 깨닫지 못한 박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을 사실상 시인한 뒤 거국내각 또는 책임총리 요구가 들끓은 것은 박 대통령에게 더 이상 국정을 맡길 수 없다는 공감대가 퍼져서다. 대통령비서실장조차 “봉건사회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 대통령 연설문 수정을 최 씨에게 맡긴 사실이 드러났다. 국가 주요 정책과 기밀이 담긴 문서까지 넘겨 대통령이 ‘도움’을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국민이 박 대통령의 권위와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그래도 헌정 중단은 안 된다는 공감대는 있었다. 그래서 여야 모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총리가 국정을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박 대통령은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과의 협의도 없이 덜컥 개각을 발표해 판단력을 의심케 만들었다.

 야당의 반발은 당연하다. 오죽하면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총리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등 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까지 반발에 가세하겠는가. 김 총리 후보자가 어제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오늘 책임총리로서의 국정운영 방안이나 야당의 청문회 거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 것도 정국이 급변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추락하는 지지율과 국민의 비판에도 잘못을 깨닫거나 교훈을 얻지 못하고 죽어도 통치스타일을 바꾸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청와대는 김 총리 지명과 관련해 “사실상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뜻을 담은 것”이라며 “김 총리 후보자가 내치(內治) 대통령”이라고 밝혔다. 진정 그런 의미라면 왜 사전에 박 대통령이 야당과 상의하지 않았으며, 왜 직접 국민 앞에 나서서 설명하지 않았는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진심 어린 참회와 반성을 하고, 검찰 수사도 기꺼이 받겠다고 자청했어야 옳았다. 진언하는 조언자도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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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권이 끝내 인사청문회를 거부한다면 김 총리 임명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김 총리 지명을 철회하고 다시 국회, 특히 야당과 상의하는 절차를 밟는 게 현명하다. 지금은 대통령의 체면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고 괜한 고집을 부리다 실기(失期)하면 그땐 하야하라는 외침을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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