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상근]‘그들’이 경계해야 할 동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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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의 어원 ‘클라시쿠스’… 사회지도층이란 뜻
일탈한 검사장과 교육부 간부 등 고위공직자가 읽어야 할 ‘신곡’
단테가 만난 표범은 욕망을, 사자-권력욕, 늑대-돈욕심 상징
개돼지보다 이들을 조심해야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Classics)이란, 누구나 칭찬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의 의미를 잘못 해석했다. 고전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방어책으로 활용한 것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면 고전을 읽지 않는 것이 흠될 게 없다는 단순 논리로 이어졌다. 원래 고전, 즉 클래식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나왔다. 클라시쿠스는 로마에서 전쟁이 터졌을 때, 나라를 위해 함대를 기부하는 사람을 말한다.

클라시쿠스는 로마 사회의 지도층을 의미했다. 경제적으로 충분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고, 직책으로 말하면 요즘 회자되는 검사장이나 교육부 기획관 이상의 고위 공직자를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나라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함대를 기부해 적국을 물리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원래 클래식은 이런 클라시쿠스가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클라시쿠스 반대 개념은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다. 전쟁이 터지면 나라를 위해 ‘자식(Proles)’을 출전시키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가진 것이 자식밖에 없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자식을 바쳐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바로 이 단어에서 ‘프롤레타리아’라는 용어가 파생했다. 원래는 ‘민중’이라 번역됐는데 최근에는 ‘개돼지’로 통칭되고 있다.

서울대 법대-사법시험-검사장의 가파른 공직 계단을 오른 사람이나 연세대-행정고시-정책기획관의 높은 자리에 오른 한국의 클라시쿠스들에게 고전 읽기를 권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단테의 ‘신곡’을 펼쳐 들자는 것이다. ‘신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인생 최전성기에 문득 뒤를 돌아다보니,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신곡’은 1300년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책이다. 그해, 단테는 35세에 피렌체의 최고 공직자가 됐다. 당시 한 사람의 일생을 70년으로 잡았으니, 35세면 일생의 정중앙을 지났다는 것이다. 지금은 100세 시대이니 50세 전후가 될 것이다. 요즘 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검사장의 나이를 보니, 50세이다. 검사장이란 최고 공직에 오른 그도 단테처럼 인생의 최전성기에,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인생의 중반기에 최고위직에 오른 단테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정확한 번역은,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Mi ritrovai)’이다. 단테는 길을 잃게 됐을까? 홀로 어두운 숲속에 있던 단테에게 무서운 동물들이 차례로 다가왔다. 으르렁거리며 나타난 첫 번째 동물은 표범이었다. 알록달록한 표범 가죽에 사람들은 매혹당하기에, 여기서 표범은 욕망을 상징한다. 단테가 길을 잃은 첫 번째 이유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느 한류스타는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화장실에 들락거렸지만 모름지기 화장실은 배설을 위한 공간이지, 사랑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단테는 어두운 숲속에서 두 번째 동물을 만났다. 사자였다. 백수의 제왕, 사자는 권력욕을 상징한다. 대중 앞에서 군림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단테는 길을 잃게 된 것이다. 고시 패스를 하면 단숨에 하위 99%를 누르고 상위 1%로 도약할 수 있다는 그릇된 권력욕 때문에 교육부의 고위 간부도 길을 잃은 것이다.

마지막에 나타난 동물은 늑대였다. 그것은 돈에 대한 욕심을 말한다. 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할 검사장이 그 법을 이용해 부정한 부를 축적했다면, 늑대가 이미 그를 집어 삼킨 것이다.

두 사람은 교도소의 방바닥이 불편해 잠을 설치거나, 고향집의 찬 마룻바닥을 등지고 때늦은 후회만 하지 말고, 고전을 펼치기를 권한다.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최고 공직에 올랐지만 사실은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를. 당신들 나이라면, 이제 인생의 방향을 돌려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됐다. 그러면 개돼지라고 무시했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그렇게 저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핵폭탄과 사드로 상징되는 군비 경쟁의 위험 앞에서도, 자식을 군대로 내보내는 사람들이다. 개돼지라 불려도 그들은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며 국민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들이다. 당신들이 경계해야 할 동물은 그런 개돼지들이 아니라,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게 만드는 표범과 사자, 그리고 늑대인 것이다.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클라시쿠스#단테#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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