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생색내기 사업 봇물… 정부 “재정만 축내” 43% 퇴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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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만 104건 불승인 판정

경기 구리시는 2009년부터 총 10조 원 규모의 ‘구리월드디자인시티(GWDC)’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80만6649m²의 터에 무역센터와 호텔, 디자인 관련 외국 기업 입주 시설 등을 건립해 연간 관광객 500만 명을 유치하고 11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야심 찬 사업이다. 구리시는 자체 비용편익 분석 결과(1.07·1 이상이면 투입 비용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를 바탕으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대규모 해제까지 관철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현재까지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막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조3367억 원이 투입되는 1단계 사업에 대한 중앙투자심사에서 5번이나 연달아 ‘퇴짜’를 놓았다. 구리시는 “낙후된 도시를 디자인 메카로 바꿀 수 있는 사업”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꿈쩍도 않는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 관계는 물론이고 투자 의향도 확실치 않다”며 “덜컥 사업을 허가했다가 재정이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각종 투자사업에 대한 정부의 심사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21일 행자부에 따르면 올 들어 상반기까지 두 차례 치러진 중앙투자심사에서 총 243건의 지자체 투자사업 중 절반 가까운 104건(43%)이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기초자치단체 100억 원, 광역자치단체 200억 원, 행사 30억 원 이상 사업의 경우 중앙투자심사를 받아야 한다. 불승인 비율은 지난해(35%)보다 8%포인트 늘었고, 5년 전인 2011년(20%)과 비교하면 두 배를 넘는다. 갈수록 정부의 문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형 사업뿐 아니라 중소 규모의 투자 계획도 가차 없이 퇴짜를 맞고 있다. 경기 수원시는 337억 원을 투입해 ‘마음건강치유센터’를 지으려 했지만 “객관적인 수요와 세부 운영 방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승인을 받지 못했다. 서울시가 추진하려던 50억 원 규모의 축제도 다른 행사와 중복된다는 이유로 걸러졌다.

이런 배경에는 민선 단체장들이 앞다퉈 내세우는 이른바 ‘치적 사업’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공약이라는 이유로 추진된 대규모 사업 투자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강원 태백시나 인천 같은 사례의 재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태백시의 경우 민선 1∼3기 시장이던 홍순일 시장의 지역경제 살리기 공약의 일환으로 4400억 원을 투자했던 ‘오투리조트’ 사업이 실패하면서 파산 위기 직전까지 몰렸다. 인천 역시 아시아경기 경기장 건설, 인천도시철도 2호선 개설 등을 위해 지방채 발행을 남발한 탓에 재정 위기 ‘주의’ 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도나 시군구 자체 심사에서는 지난해 재정투자사업 불승인 비율이 각각 13%, 2%에 불과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지자체 자체 심사는 ‘팔이 안으로 굽는’ 결과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2조2070억 원이 들어가는 경기 평택시 브레인시티의 경우 3조 원이 넘는 경제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내세웠지만 정부 지정 기관이 분석한 수익률은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반면 지자체들은 “정부가 지역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 잣대로 승인을 거부한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구리시 관계자는 “정부의 불승인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를 잃는 등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지자체#사업#불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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