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수]‘빅쇼트’의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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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경제부 차장
김상수 경제부 차장
스트리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마디 내뱉는다.

“집값의 5%만 내면 은행 대출로 집을 살 수 있어요. 난 이미 5채나 샀는걸요.”

미국 영화 ‘빅쇼트(Big Short)’에 등장하는 4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펀드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커렐 분)은 주택담보대출 실태조사를 하다가 이 얘기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은행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무려 95%였던 것이다. 스트리퍼처럼 부동산 호황 속에서 “무조건 집을 사라”는 은행들의 꼬임에 넘어간 사람들은 나중에 금리가 오르자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줄줄이 파산한다. 대출금 회수 불능에 빠진 금융기관들도 잇따라 무너진다. 이게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을 상대로 한 주택담보대출) 사태다.

빅쇼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이 사태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빅쇼트는 원래 ‘자산가치 하락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금융투자전략’을 의미한다. 영화는 미국 주택담보시장의 부실 징후를 미리 알아채고 파생상품 거래에서 가치 하락에 거액을 베팅한 투자자들을 다루고 있다. 실화다. 하지만 이 천재들이 어떻게 수십조 원을 벌었을까가 주제는 아니다. 추악한 미국 금융시장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까발리자는 게 감독의 의도다. 전 세계 경제를 충격에 몰아넣고 미국 내에서만 수백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바로 탐욕스러운 월스트리트 투자자들과 컨트롤타워 기능을 제대로 못 한 정부의 합작품이라고 고발하고 있다.

영화에선 공매도니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부도스와프(CDS) 같은 골치 아픈 경제 용어들이 날아다닌다. 취향에 맞지 않으면 보기 힘들다. 하지만 끝날 때쯤 교훈 하나를 얻을 수 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금융은 사기이며 그 희생자는 언제나 당신 자신이다’는 자막과 함께.

필자는 이 말에 100% 공감한다. 금융기관 직원들의 말에 절대 현혹되면 안 된다. 그들은 늘 “위험은 낮고 예금금리보다 높은 수익이 보장된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이 말하는 ‘저위험 고수익’ 상품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홍콩 주가연계증권(ELS)을 보자. 지난해 국내 금융기관에서 발행된 ELS의 절반이 홍콩 H지수에 연동됐다. 아마도 이 상품을 판매할 때 직원들은 틀림없이 이렇게 유혹했을 것이다. “고객님. 은행에 돈 넣어봐야 금리가 낮아 소용없어요. ELS 한번 해보세요. 만기 때까지 특정 지수가 손실 구간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7% 안팎의 금리가 보장되죠. 근데 상품 설정할 때 손실 구간을 아주 낮게 설정하니까 원금이 깨질 일도 없어요.” 이 지수가 올해 반 토막이 나면서 개인투자자들은 수조 원대의 손실을 볼 위기에 처했다.

정부도 믿으면 안 된다. ‘최경환 경제팀’은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4차례나 부동산 시장 부양책을 내놓으며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때 빚내서 집을 산 사람들은 좌불안석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약 1200조 원)에 놀란 정부가 2월 1일부터 주택담보대출 심사 기준을 강화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어서다. 지난해 12월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12%로 전달보다 0.08% 뛰었다. 대출금리가 계속 오르면 대출을 끼고 주택을 산 사람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명심하자. 세상에 믿을 놈은 하나도 없다. 금융 부동산 시장에선 더욱 그렇다.

김상수 경제부 차장 ssoo@donga.com
#빅쇼트#서브프라임 모기지#주택담보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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