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웰빙 새누리당의 “니가 가라, 하와이”식 험지출마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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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에서 분출되는 ‘험지(險地)출마론’을 보는 심정은 답답하다. 출마자들 사이에 정치지형이 불리한 지역구를 피하려는 물밑싸움은 역대 공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화두로 떠오른 적은 없다. 친박(친박근혜)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24일 조윤선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서울 서초구 출마 선언에 대해 “험지에 나가 성공할 만큼 체력이 단단하지 않다”며 김황식 전 국무총리, 안대희 전 대법관과 함께 “인큐베이터에 넣어서 정치적 거목으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세 사람 모두 친박계로 분류된다. 반면 험지 출마 후보로는 비박(비박근혜) 중진 이재오 의원을 꼽았다.

험지출마론은 내가 출마하기 꺼려지는 지역에 네가 나가라는, 영화 ‘친구’의 “니가 가라 하와이”의 정치 버전이다. 어감도 불편하다. 새누리당이 유리한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서울 강남권 지역 외에는 험지라는 뜻이다. 외교관들은 정정(政情)이 불안하고 소득수준이 낮은 중동이나 아프리카를 험지로 치는데 새누리당 인사들이 ‘험지’ 운운하는 건 유권자 모독이다.

본질은 친박과 비박의 공천권 갈등이다. 새누리당은 4월 의원총회에서 전략공천을 배제한 상향식 공천을 의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 운운하고 측근들이 양지(陽地)인 TK 지역으로 몰려가자 비박계가 “박심을 업은 사람들은 수도권으로 가라”며 험지출마론에 불을 붙였다. 김무성 대표도 김 전 총리와 안 전 대법관을 만나 험지 출마를 요청했다. 이런 게 전략공천이 아니고 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야당세가 강한 험지에 개혁 성향 인사를 대거 공천해 당선시켰다. 대통령 측근이나 지도부부터 희생정신을 발휘해 험지로 가야 감동도 주고 새누리당의 지지 기반도 넓히는 게 가능하다. 지금 새누리당은 권세를 누린 사람들이 쉽게 국회의원 돼서 쉽게 의정활동 하는 웰빙족으로 가는 모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안철수 신당이 새누리당의 왼쪽 귀퉁이를 잠식하면서 당은 더욱 ‘기득권 우파’로 몰리고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험지출마론으로 지새우다 땅을 치고 후회하는 날이 없길 바란다.
#새누리당#험지출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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