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함인희]삶의 가지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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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지해야 건강하게 크는 소나무 묘목처럼
우리네 삶도 단순화시키기 위해 불필요한 가지들을 잘라내야 한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올해도 어김없이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어설픈 초보 농사꾼 이력(?)도 어느덧 여섯 해로 접어들었다. 소나무 묘목을 심던 첫해엔, 나무란 땅에 심기만 하면 저절로 알아서 크는 줄 알았는데, “나무는 사람 발자국 소릴 들으며 큰다”는 마을 이장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가르치는 일을 업(業)으로 삼아온 덕분인가, 말 못하는 나무도 저리 사람 손을 그리워하거늘, 하물며 사람 농사는 얼마나 많은 손을 타랴 싶은 생각이 늘 떠나질 않는다.

처음 묘목 상태에선 반송(盤松)이나 미인송(美人松)이나 이 나무가 저 나무 같고 저 나무가 이 나무 같은 것이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았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반송은 ‘반송답게’ 단단한 밑받침을 기반으로 봉긋이 원을 그리며 자라고 있고, 제1황금송은 ‘돌연변이 소나무답게’ 솔잎 색깔이 계절의 변화에 맞춰 연한 노란빛에서부터 말간 연둣빛을 넘나든다.

소나무 키우는 재미는 전지(剪枝)를 해가며 모양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던 나무 전문가의 말씀이 아니어도, 해마다 가지치기를 해주는 것은 필수란 생각이 초보자의 눈에도 선명하게 들어온다. 그래서 밑으로 늘어진 가지는 잘라주고, 삐죽삐죽 웃자란 가지는 다듬어주고, 서로 충돌하는 가지는 통풍이 잘 되도록 정리해주고, 덕지덕지 엉겨 붙은 잔가지들은 보기 좋게 솎아주곤 한다.

그러고 보면 나뭇가지만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도 해마다 쳐내야 할 가지들이 쌓이는 듯하다. 한 해를 돌아보니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필요 이상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일도 아닌데 초조해하며 서성이던 적이 다반사였던 것 같다.

‘단순하게 살아라’의 저자 로타르 자이베르트에 따르면 우리네 삶을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축으로 4개 범주로 나눠 보면 중요하고도 급한 일, 중요하지만 급하진 않은 일, 중요하진 않지만 급한 일, 그리고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일로 분류가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정작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건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일이란 것이다.

자이베르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삶을 단순화시키고 불필요한 가지들을 깔끔하게 쳐낸 후에, 중요하지만 그다지 급하진 않은 일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는 것일 게다. 언젠가는 읽으리라 책꽂이에 꽂아둔 책 꺼내 읽기, 오랜 친구와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기, 오솔길 따라 걸으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등이 급하진 않지만 참으로 중요한 삶의 목록이란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가지치기를 하다 보면 순간순간 갈등과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쪽 가지를 치는 것이 옳은 건지, 저쪽 가지를 잘라내는 것이 맞는 건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기 때문이다. 한데 30여 년을 한결같이 소나무를 키워 오신 이웃 마을 어른께선 앞으로 2∼3년 후를 내다보며 척척 가지치기를 하신다. 초보자의 눈엔 이듬해 봄 소나무의 모습도 예측이 불가하거늘, 2∼3년 후 모습까지 생생하게 눈앞에 그리시며 전지를 하는 어르신 솜씨에 절로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불필요한 가지를 쳐내야 하는 또 다른 뜻은 남아 있는 가지를 튼실하게 해줌은 물론이요, 필요한 곳에서 새 가지가 나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의미가 있음 또한 어르신을 통해 어깨 너머로 배웠다.

이제부터는 번잡하고 분주하게 살아가다 어느 가지를 쳐내야 할지 망설여지게 되면, 오랜 연륜 속에서 소중한 지혜를 차곡차곡 쌓아 오신 어르신들을 찾아뵈어야지… 싶어진다. 예전엔 집안에도 어르신이 많이 계셨고, 이웃에도 사회에도 우리를 이끌어주는 ‘어른’이 자리하셨건만 평균수명이 길어진 요즘 오히려 “어디에도 어른들이 안 보인다”는 이야기가 떠도는 걸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한 해를 보내면서 나의 삶에서 쳐내야 하는 가지들은 무엇일지 깊이 생각하여 깔끔하게 쳐내고, 어떤 가지들을 과감히 정리하면 좋을지 가까이 계신 어른들을 찾아뵙고 현명한 지혜와 든든한 용기를 구하고픈 마음 간절해온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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