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는 세계가 테러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징조는 2014년 6월 IS를 이끄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정치와 종교의 권력을 아울러 갖는 이슬람의 지배자를 뜻하는 칼리프 시대를 선언하면서부터 나타났다. 그 파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기존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현 국제질서에서는 국가가 주요 행위자였다. IS는 그런 통념을 뒤집었다. IS의 잔혹한 테러는 국가의 움직임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던 과거와 달리 개인과 일부 집단의 움직임이 국가들에 큰 파장을 던지는 현실로 다가왔다.
IS가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 안에 본거지를 마련한 뒤 스스로 ‘국가’라고 내세우는 것도 기존 국제질서의 틀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특징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테러의 성격이 초(超)국가적 문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IS는 지속적인 테러로 국제사회와, 또 기존 국제질서와 맞서려고 한다. 그렇게 전선을 확대하는 것이 중동지역에서 세(勢)를 결집하고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경제 영토를 넓혔다는 얘기에 비춰 본다면, IS는 국제질서와 대립하면서 테러 영토를 넓힌다고 할 수 있다. IS는 영토라는 물리적 공간을 초월해 테러 네트워크 확장으로 세를 확보하고 있다. 칼리프 선포 이래 IS의 테러 네트워크는 아프가니스탄 알제리 이집트 리비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예멘으로 급속히 확장됐다.
터키 F-16s 전투기가 시리아 공습에 나선 러시아의 수호이(Su)-24 전투기를 격추한 것은 이런 과정에서 불거진 파장의 하나다. 러시아가 IS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시리아 반군을 공격함에 따라 서방 세계가 몰아내려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돕다가 새로운 충돌이 빚어진 것이다. 테러 응징이라는 명목으로 나섰지만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이런 변형적인 파장은 IS의 테러가 지속될수록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IS 테러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국내에도 IS에 동조하고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꿈꾸는 한국인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10여 명이 IS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지만 관련법 미비로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5월 미국 정보당국이 파리 테러의 총책인 압델하미드 아바우드가 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사전에 경고했지만 프랑스 당국이 행방을 찾지 못해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IS는 이미 8월에 한국을 십자군 동맹국 62개 나라에 포함된 테러예상국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테러에 대비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애국법을 통해 테러 대응에 나선 선례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테러 관련법 제정을 두고 국가정보원이 과도한 정보 접근, 그를 넘어서는 정보 감시에 나설 가능성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해선 안 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치권의 초당적 접근과 지혜가 필요하다.
국제적인 공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테러 문제는 한인 피해자만 확인하는 수준에서 접근했지만 이제는 좀 더 고차원적인 국제 협의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공조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테러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다. 대외 경제 의존도가 약 97%에 이르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계속 외면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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