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병선]고독해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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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문화부 기자
민병선 문화부 기자
요즘 극장가의 가장 뜨거운 영화는 ‘마션’이다. 최근 본 이 영화는 기계문명의 차가운 질감이 주를 이루는 기존 공상과학(SF) 영화와 달리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낙관론과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지구 전체가 분투하는 인간주의가 훈훈하게 느껴진다. 미국식 영웅주의가 없는 점도 좋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2013년 개봉한 영화 ‘그래비티’의 아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주복 한 겹에 의지한 채 우주 공간에서 사투를 벌이는 실제 같은 아슬아슬한 액션, 관객이 실제 무중력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도록 만드는 기술은 ‘그래비티’에서 처음 본 것이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1000만 관객을 모은 ‘인터스텔라’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이런 기시감 때문인지 ‘마션’은 재밌지만 특별한 영화는 아니었다. ‘마션’ ‘인터스텔라’ 같은 ‘우주 조난 영화’의 원조는 ‘그래비티’인 것이다.

‘그래비티’의 이 같은 신선함에 당시 영화를 함께 본 한 영화평론가는 “역시 미제(미국 제품)는 위대하다”라고 기자에게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제가 아니라 ‘멕시코제’라고 해도 된다. 영화를 만든 회사는 미국의 워너브러더스지만 감독은 멕시코 출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기 때문이다. 쿠아론 감독은 영화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런 독특한 영화를 만들었다. 여러 영화의 원천 기술을 제공한 ‘그래비티’ 창의력의 원천은 다양성이었던 셈이다.

요즘 할리우드에는 외국 감독 천지다. 쿠아론과 같은 멕시코 출신으로 ‘퍼시픽림’을 연출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도 각광을 받고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리안은 대만 출신이고, ‘쏘우’ 시리즈의 제임스 완 감독은 말레이시아계 호주인이다. 기자가 ‘올해의 가장 미친 영화’로 꼽을 만큼 재밌게 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조지 밀러 감독도 호주 출신이다. 이처럼 할리우드를 벗어난 곳에서 새로운 상상력이 나오고 있다.

창의력은 요즘 한국 사회의 화두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벽에 막힌 우리는 이제 ‘베끼기’ ‘따라잡기’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의 끝을 보고 있다. 선진국을 비슷하게 흉내 내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창의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적으로는 할리우드처럼 우리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올해 초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170만 명이 넘는다. 다문화 속에 창조성의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본다.

개인은 어떨까. 일본 메이지대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신간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 고독을 통해 창의력을 키우는 시간을 갖자고 말한다. 고독은 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지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일본 나고야대 건축학과 교수였던 모리 히로시 씨의 책 ‘고독이 필요한 시간’에도 고독이 창조력의 원천이라고 나온다. 그러니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애인보다 더 끼고 사는 스마트폰과 가끔 헤어져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
#그래비티#고독#인터스텔라#창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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