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샤요 국립극장서 울려퍼진 한국의 종묘제례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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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삶에 쉼표의 감동

18일 밤 프랑스 파리 시내 국립샤요극장 무대에 오른 종묘제례악. 현지 관객들은 600년 역사가 새겨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국립국악원 제공
18일 밤 프랑스 파리 시내 국립샤요극장 무대에 오른 종묘제례악. 현지 관객들은 600년 역사가 새겨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국립국악원 제공
“Jongmyo Jeryeak, Gugak… classique et myst´erieux(종묘제례악, 국악… 고전적이고 신비로워요).”

푸른 눈의 관객들의 억양에는 프랑스어 특유의 콧소리가 많이 섞였지만 ‘종묘제례악’ 발음만큼은 한국인처럼 정확했다. ‘Gugak’을 프랑스어식으로 읽으면 ‘귀가크’이지만 하나같이 ‘구각’이라 말했다.

18, 19일 밤(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 위치한 샤요 국립극장 내 장 빌라르 홀 무대에 종묘제례악이 올랐다. ‘2015∼2016 한불 상호 교류의 해’(9월∼내년까지)의 시작을 알리는 첫 한국 예술작품이다. 세계적인 공연예술의 메카인 이 극장이 2015∼2016시즌 개막작으로 종묘제례악을 선택했다는 것도 현지에서 큰 화제가 됐다.

18일 오후 8시, 객석에 불이 꺼지고 검고 붉은 제의를 입은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무용단원 85명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125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먼 동쪽 나라에서 수백 년 전 왕의 덕을 찬양하는 이 매우 느린 의식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임했다. 해금, 대금, 아쟁, 가야금, 장구, 징, 태평소는 물론이고 축, 어, 박, 편종, 편경 같은 독특한 악기들의 모양새와 소리에 먼저 관심이 모아졌다. 피나 바우슈를 비롯한 무용가들의 성지로 유명한 극장인 만큼 관객들은 극도로 느린 박자에서도 정교한 군무를 보여주는 일무(佾舞·제의 때 여러 사람이 여러 줄로 벌여 서서 추는 춤)에 특히 감탄했다. ‘Yeongsin Huimun’(영신희문) ‘Punganjiak’(풍안지악) 같은 제목 아래 제문 내용이 프랑스어로 번역돼 자막으로 제공됐는데 조는 관객도 몇 명 있었지만 한국인이 보기에도 느리고 난해한 내용을 생각하면 놀랄 정도의 집중력을 객석은 보여줬다.

관객으로 온 비다르 로랑스 귀스타브플로베르 중학교 교장은 “정통과 고전의 품격을 간직한 동시에 매우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공연이다. 에펠탑처럼 세월의 풍파를 견딘 견고한 건축물을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나탈리 살리 ‘코레 매거진’ 편집장은 “케이팝과 승용차 같은 첨단 문화에 비해 한국 전통 문화를 경험할 기회는 극히 적다. 이번 기회로 비슷한 문화가 프랑스에 많이 소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예술이 샤요극장 무대에 오른 건 1938년 최승희의 춤 이후 처음이다. 디디에 데샹 국립샤요극장장은 “현대인은 늘 외부적으로 경쟁과 속도, 미친 듯이 진행되는 삶에 지쳐 있다. 종묘제례악은 생각하고 숨쉴 여유를 준다. 문화가 경시되고 검열되는 세상에서 잘 보존된 문화의 힘, 시간을 초월하는 미를 보여줌으로써 프랑스인에게 오늘을 더 잘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밤 공연 뒤에는 공연장 인근 에펠탑에서 내년 8월까지 이어질 한불 상호 교류의 해 개막을 축하하는 조명 쇼가 벌어졌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에펠탑이 한-프랑스 교류와 태극 문양을 뜻하는 파랑과 빨강 빛으로 물들었다.

한불 상호 교류의 해는 내년까지 프랑스와 한국에서 다양한 공연과 전시, 영화 상영 등의 문화행사 개최로 이어진다.

파리=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종묘제례악#프랑스#한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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