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롯데·한화·SK 청년고용, “총수 구해 달라” 성의 표시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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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롯데그룹이 2018년까지 2만42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對)국민 담화를 통해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호소한 지 하루 만이다. 앞서 한화그룹은 2일 2017년까지 1만7569명 고용을, SK그룹은 5일 2만 명의 창업을 지원하는 ‘청년 일자리 만들기 프로젝트’ 시행을 밝혔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잇달아 청년 일자리 마련에 나서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세 그룹 모두 총수의 8·15 특별사면을 앞두고 있거나,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시점이어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더구나 롯데는 올 초 1만5800명을 뽑겠다고 발표했는데 어제 숫자를 늘리면서 비정규직이 얼마나 포함됐는지도 밝히지 않아 급조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기업의 중요한 경영 전략인 인력 고용이 정부의 팔 비틀기나 정치적 이유로 결정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전두환 정부 때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이 청와대의 재계 회동에 지각해 그룹이 공중분해가 됐다는 이야기가 한국 기업사의 전설로 남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년 전 10대 대기업 회장단을 청와대에 초청해 투자 활성화를 요청한 적이 있다. 삼성 이건희,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등 모두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다고 화답했으나 약속을 지켰는지는 의문이다. 2년 만인 지난달 24일 박 대통령은 한화를 비롯한 대기업 총수들에게 또 고용을 촉구했다. 이번처럼 총수가 어려움에 빠진 기업은 정부에 ‘선처’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 고용 계획을 발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27일 민관 합동 회의를 열어 2017년까지 청년 일자리 기회 20만 개를 만든다는 ‘20만 플러스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그러나 정부가 대기업을 몰아가는 분위기로는 지속 가능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다. 한번 고용하면 해고가 어려운 노동 경직성을 풀어주어야 오히려 고용도 늘릴 수 있다.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기업 하기 좋은 투자 환경을 조성해 부담을 줄여주어야 청년 고용이 획기적으로 늘 수 있다.

어제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복귀함으로써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노사정위원회가 재개될 전망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최대한 타협을 추구하되, 안되면 전문가들로 새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플랜B’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노동개혁을 이끈 하르츠위원회도 그렇게 해서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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