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공포는 죠스처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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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경제부장
박중현 경제부장
“해변까지 차를 몰고 오다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바다에서 상어에게 물릴 확률보다 훨씬 높습니다. 안심하고 바닷가에 놀러 오세요.”

1975년 6월 20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한 영화 ‘죠스(Jaws)’는 해수욕장 주인들에게 끔찍한 악몽이 됐다. 여름 대목을 앞두고 나온 이 영화를 보고 상어 공포증에 걸린 미국인들이 바닷물에 몸 담그길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초유의 불황을 맞은 해수욕장 주인과 지방자치단체들은 고민 끝에 교통사고 사망률과 상어에게 물려 숨질 확률을 비교한 광고를 신문에 냈다. 하지만 식인 백상어의 습격을 받은 희생자의 팔다리가 물속으로 툭 떨어지는 장면, ‘빠밤 빠밤 빠밤빠밤빠밤…’ 하는 섬뜩한 효과음의 공포는 이성으로 극복하기에 너무 강력했다. 사람들이 두려움을 완전히 지우고 다시 바다에 뛰어드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지난 주말 개봉 40주년을 맞은 죠스는 영화사(史)에 ‘블록버스터의 원조’로 기록돼 있다. 20대 후반이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로 단번에 세계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떠올랐다. 죠스가 명작인 이유 중 하나는 미지의 공포가 닥쳤을 때 드러나는 인간 군상(群像)의 전형들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해수욕장 개장일을 며칠 앞두고 미국 북동부 섬마을 애미티의 해변에서 상어에게 물려 죽은 젊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뉴욕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경찰서장 브로디는 곧바로 해변을 폐쇄하려 한다. 하지만 이 마을의 시장은 위험을 과소평가하며 해변 폐쇄와 사건 공개에 반대한다. 재난영화에 꼭 끼는 정치인 또는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이다. 이번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초기 바이러스의 확산성을 얕보고 병원 이름 비공개 원칙을 고집한 보건당국, 전염병을 자기 홍보의 기회로 활용하려 한 일부 정치인이 떠오른다.

어린 소년이 추가로 목숨을 잃고서야 주민들은 위험을 현실로 인정하지만 경제 문제가 걸린다. “우리에겐 ‘서머 달러(summer dollar)’가 필요해”라고 외치는 시장과 지역상인 대부분은 해변 폐쇄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상어보다 더 무서워한다. 이번에 한국 최고의 병원이 메르스의 최대 확산지가 된 데에도 비슷한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호러 무비의 감초 격인 어리석은 인간들도 꼭 있다. 가까스로 해변을 개장한 날 어린이들이 벌인 상어 등지느러미 장난으로 해변은 난장판이 된다. 이번 사태 때에는 메르스에 걸렸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 격리 규칙을 비웃듯 전국의 공공장소를 돌아다닌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실수가 있었어도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위험에 맞서는 브로디 서장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지금 이 순간 갑갑한 방역복을 입고 음압병실에서 메르스와 용감히 싸우고 있는 의료진이 바로 그런 영웅들이다.

메르스는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거리에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팍 줄었다. 극장에서는 이제 고희가 된 스필버그가 만든 ‘쥬라기 월드’가 관객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한국 사회의 고질인 집단 망각증이 메르스 공포 극복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연일 연출하는 위태로운 정치 드라마는 엉뚱하게 공포를 줄여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

비이성적으로 과장된 공포는 잊혀져야 한다. 하지만 죠스와 달리 3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는 여전히 현존, 실재하는 위협이다.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교훈을 꼼꼼히 챙겨 유사한 위험이 다시 찾아왔을 때 정부 당국의 무능력과 그로 인해 증폭된 불신이 우리 사회를 불필요한 공포에 빠뜨리지 않길 바란다. 죠스는 속편이 3차례나 나왔다.

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죠스#해수욕장#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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