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기 규제’에 감전된 전기자전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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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처럼 면허 있어야 하고 자전거도로 달리면 불법

올해 전 세계 전기자전거 판매량이 4000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은 전기자전거를 자전거가 아닌 ‘원동기’로 보는 법과 제도 때문에 세계적인 추세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자전거 세계 보고서(EBWR)에 따르면 지난해 3683만 대였던 전 세계 전기자전거 판매량이 올해 4007만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유럽에서는 독일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전기자전거 판매량이 빠르게 늘어 유럽연합(EU) 지역의 전기자전거 시장은 해마다 20% 정도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판매량의 90%를 차지하며, 독일과 일본에서는 일반 자전거 판매량은 줄어드는 대신 전기자전거의 판매량이 늘어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전기자전거는 완전히 충전한 뒤 페달과 함께 사용하면 평지에서 60∼70km는 갈 수 있고, 한 번 완전히 충전하는 데 100원 정도밖에 들지 않아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한국은 언덕 지형이 많아 전기자전거가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국내 전기자전거 시장 성장세는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국내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는 1만3000대(120억 원) 수준으로 전 세계 판매량의 0.04%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아직까지 다소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120만∼300만 원대) 탓도 있지만, 관련 법규가 산업의 발전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전기자전거는 법적으로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된다. 법은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원동기 이상의 면허를 취득하도록 정해놓고 있다. 현행법상 전기자전거가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것도 불법이며, 어린이는 물론이고 성인도 의무적으로 헬멧을 써야 한다. 일반인들의 인식과 달리, 법에서 전기자전거는 자전거라기보다 오토바이에 가까운 것이다.

반면 영국 미국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은 14세나 16세 등으로 나이 제한을 두는 경우는 있어도 면허를 요구하지는 않고, 대부분 자전거도로를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고 속도는 시속 24∼32km로 제한한다.

국내에서도 전기자전거를 법적으로 자전거로 분류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2010년부터 발의됐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소관 상임위도 아직 통과를 못하는 등 지지부진한 상태다. 담당부처인 행정자치부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행자부 주민생활환경과는 “국내 자전거도로 실정이 대부분 전용도로가 아니라 보행도로와 같이 있는 경우가 많고, 시민의 안전의식 수준도 낮은 편”이라며 “일반 자전거보다 빠르게 달리는 전기자전거를 자전거와 같다고 보긴 힘들다는 견해도 많다”고 설명했다. 전기자전거를 불법 개조해 제한 규정보다 속도를 높여 사용할 우려도 제기된다.

신희철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과 유럽처럼 면허보다는 운전자의 나이 정도만 규제하고, 전기자전거의 최고 속도를 일반 자전거보다 약간 빠른 수준인 시속 25km 정도로 제한하는 것이 안전과 전기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해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남식 삼천리자전거 연구소장은 “국내외 업계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모터의 정격출력은 250W 수준이며, 이 정도로는 불법 개조를 하더라도 속도가 시속 30km보다 크게 빨라지긴 힘들다”고 설명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원동기#규제#전기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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