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희균]일괄휴업 종료에 대처하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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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보름여 전 나는 대만 타이베이의 한 식당에서 곱게 말하자면 무념무상 상태로, 속되게 말하자면 ‘멍 때리며’ 앉아 있었다. 며칠 한국 뉴스를 안 본 덕에 나의 뇌는 해맑게 비어 있었다.

무심히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얼굴과 함께 한국 소식이 나왔다. 대만 뉴스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왜 나오나 싶어 정신을 퍼뜩 차리고 인터넷에 접속해보니 문 장관의 발언이 헤드라인으로 꼽혀 있었다. ‘개미 한 마리도 지나치지 못하게 총력 대응’이라는.

주위를 둘러보니 대만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한국 메르스 의심환자가 중국으로 갔다’는 속보를 보고 있었다. 이미 한국발 메르스 사태가 외국 뉴스까지 장식한 와중에 개미 한 마리 운운하니 낯이 뜨거워졌다.

그런데 이후 돌아가는 국면을 보니 ‘개미 한 마리’가 빈말은 아니었다. 중국에서 열리는 국제행사 준비로 한 달 이상 야근하던 친구는 ‘한국에서는 참석하지 말아 달라’는 주최 측의 요청에 좌절했다. 다른 친구는 해외여행을 나흘 앞둔 지난 주말, 외국 항공사로부터 ‘7월까지 한국편 운항 취소’라는 통보를 받고는 “메르스 바이러스만 빼고 개미 한 마리도 지나갈 수 없다”고 했다.

예기치 못한 비상 상황에서 행사나 여행이 취소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부가 초기에 제대로 대응했더라면…’이라고 원망해봤자 엎질러진 물이다. 삽질을 거듭한 정부가 ‘건강에 이상이 없는 이들은 일상생활로 돌아가 경제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니 분통이 터지긴 하지만.

그런데 아이들이 대규모 단체생활을 하는 학교의 경우 성격이 다르다. 만에 하나 학교 내 감염 사태가 벌어진다면,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말 일이 아니다.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고, 아이들의 예후를 예측할 수 없으며, 어떤 식으로 번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주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서는 일괄휴업령이 내려졌다. 보건 당국은 휴업이 지나치다고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교과서대로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교과서랄 것이 아예 없는 상황이다. 선제적인 휴업이 차선이었다.

문제는 휴업이 장기화하는데도 상황이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꼬였다는 점이다. 줄곧 학생 환자가 없다던 정부는 8일 뒤늦게 10대 확진 환자가 있다고 밝혔다. 보건 당국은 이 고교생이 입원 중이라는 이유로 교육부나 해당 교육청에 관련 정보를 주지 않았다. 이 학생의 거주지와 학교에 대한 틀린 정보가 퍼지면서 수도권 학부모들의 두려움은 커졌다. 12일 오후에는 교사 확진자와 초등학생 의심환자 소식까지 전해졌다. 하필 불과 몇 시간 전, 교육부와 교육청이 한목소리로 일선 학교에 적극적인 수업 재개를 요구한 날이었다.

일괄휴업령이 끝나면서 지난주 3000곳에 육박했던 휴업 학교는 15일 475곳으로 확 줄었다. 그러나 주말을 지나면서 4차 감염, 지역 감염 등의 얘기가 나와 오히려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더 커진 상황이다. 지금 어린이나 수험생 자녀를 둔 이들이 메르스 자체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교사와 학생 환자 발생 사실을 해당 학교에조차 알리지 않으니 불신과 불안은 커져만 간다. 정부가 번번이 ‘개미 한 마리’ 식의 뒷북을 울리는 것이 불신의 양분이 되고 있다. 이제라도 학교 구성원과 관련된 메르스 감염 정보는 숨김없이 빠르게 공개하는 것이 최선이다. 정부가 초기에 메르스 관련 병원 정보를 꽁꽁 숨겼다가 사태를 키운 패착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메르스#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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