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62일짜리 총리’ 인사 참사, 국민의 인내심 바닥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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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게이트’에 연루된 이완구 국무총리가 취임 62일 만인 그제 사의를 표명했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이 총리에게 3000만 원을 줬다”고 밝히고 목숨을 끊은 지 11일 만이다. 사의를 표명한 시점으로 보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단명 국무총리이고,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에 사의를 밝힌 헌정사상 초유의 총리다. 본인의 불명예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런 총리를 둔 박근혜 대통령과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박 대통령의 자업자득이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빚은 최악의 참사다.

이 총리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임명동의안 표결 처리를 앞둔 올해 2월 12일 본란은 ‘만신창이 이완구 후보자, 총리가 돼도 문제다’라고 썼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병역 회피, 부동산 투기, 언론 외압 의혹이 제기됐을 때 이 총리가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거듭하면서 정직성과 신뢰성에 큰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총리는 특히 일부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이른바 ‘김영란법’을 들먹이며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논란을 빚으면서 밑천을 다 드러내 보였다. 그는 국회의원들의 거듭된 추궁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 녹취록이 있으면 틀어 달라”며 완강히 부인했다가 실제로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반어법적 표현이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런 점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고 말을 바꿨다. 이런 모습은 최근 그가 며칠간 성 회장과의 관계와 독대 여부, 3000만 원 수수 의혹 해명에서 보여준 행태와 너무 닮았다.

박 대통령이 비선(秘線) 국정농단 의혹 및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으로 민심 이반 현상이 심각해지자 올해 1월 23일 돌연 국무총리 교체 카드를 들고 나온 것부터가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아니었다.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던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이라는 핵심 청와대 비서관 3명을 교체하지 않고, 국무총리 교체라는 ‘깜짝 카드’로 국면 타개를 꾀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총리 적격자를 찾기보다는 인사청문회를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는 현직 국회의원에다 야당과 말이 통하는 여당 원내대표 출신, 충청 민심을 고려해 이 지역 출신인 이 총리를 택한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결국 박 대통령의 인사관(觀)과 사람을 보는 눈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총리 후보자만 3명이 낙마했고, 장관 후보자의 낙마 사례는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다. 박 대통령은 첫 조각 이후 지금까지 익히 아는 인사 중에서 수첩 인사, 밀봉 인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계속된 인사 실패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 고집을 보여 극심한 불통 논란까지 자초했다. 이 총리에 앞서 지명된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KBS의 왜곡 보도로 친일 반민족 역사관을 가졌다는 논란에 휩싸이자 박 대통령은 자진 사퇴를 유도함으로써 스스로 인사청문회라는 합법적 제도를 무력화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작년 7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수행 능력이나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검증이 반복돼 많은 분들이 고사하거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총리 물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높아진 국민의 인사 검증 기준을 통과할 만한 적격자를 세우지 못한 박 대통령의 책임이 무겁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청와대 문건 파문의 핵심 책임자인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에 대해서는 “참으로 사심이 없는 분”이라고 무한 신뢰를 보냈다. 사람을 보는 박 대통령의 눈과 국민의 눈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2년 10개월 남았다. 후임 총리는 사실상 박 정부의 마지막 총리가 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인사 실책을 만회하는 길은 후임 총리만큼은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을 앉히는 일이다. 또다시 비슷한 인사 참극이 발생한다면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극에 달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구상하는 각종 개혁과 원만한 국정 운영도 물거품이 되고 말 게 분명하다.

책임감 소신 정치력 등 국무총리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많이 있지만 총리 후보자와 현직 총리의 낙마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자질은 도덕성이 아닐 수 없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국민의 신뢰가 생기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 제대로 고르고, 제대로 검증해야 하지만 후보자로 선택되는 사람도 스스로를 면밀히 되돌아보고 조금이라도 양심에 걸리는 게 있으면 나서지 말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판국에 과연 총리를 하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도 우려된다.
#성완종 게이트#이완구#사의 표명#인사청문회#인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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