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독일과 미국의 ‘일자리 늘리기’ 모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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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경제가 꼭 성장해야 하나? 성장률 0%인 나라들도 잘살던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가 불쑥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인구가 늘어나니까 일자리도 늘리려면 성장을 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러나 스스로도 정말 고성장을 해야 일자리가 많아지는지 자신이 없어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자료도 찾아봤다.

과거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경제성장이 필요했다. 한국이 세계 13위 경제대국이 된 지금은 부(富)의 총량보다 소득 양극화가 더 문제다. 지금 경제성장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다. 한국은 성장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일자리 7만 개가 새로 생긴다.

그럼 성장률이 높은 나라가 일자리도 많은가? 꼭 그렇지는 않다. 독일과 미국은 정부 정책과 사회적 타협에 따라 일자리 환경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독일은 모두 경제가 어려웠지만 고용률은 큰 차이가 났다. 2009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7%였고 고용률(15∼64세)은 2007년 71.8%에서 2010년 66.7%로 급감했다. 반면 같은 기간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4.7%로 미국보다 더 나빴지만 고용률은 69.0%에서 71.1%로 오히려 늘어났다.

독일은 ‘고용 유지 지원 제도’가 발달했다. 경기가 나빠져도 기업은 사람을 자르지 않고, 근로자는 근로시간과 임금을 줄이며, 정부는 이런 기업들을 세금으로 지원한다. 노사정이 각각 조금씩 손해를 보며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기업들은 “사람 안 자르길 잘했다”고 할 때가 온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이도 별로 없다.

미국은 세계에서 고용이 가장 유연한(해고와 채용이 자유로운) 나라다. 경제가 나빠지면 기업은 직원들을 일시해고 하고 경제가 살아나면 다시 채용한다. 노동 분야에서도 자유시장 제도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미국이다. 월마트와 월스트리트가 대비되듯이 소득불평등이 심하고 저임 근로자의 비율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다(한국이 두 번째다).

고용이 유연한 미국 모델과 근로시간 및 임금이 유연한 독일 모델, 당신이라면 어느 모델을 택하겠는가. 노동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을 특이한 사례로 본다.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사회적 조정을 통해 경기 변동에 관계없이 고용률을 75∼80%로 유지한다.

한국은 미국과 독일의 나쁜 점만 모아 놓았다. 경기가 좋아져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 대기업 입사 경쟁률은 수백 대 1이고 중소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대기업은 불공정거래로 협력업체의 성장을 가로막고, 중소기업은 정부 지원금과 저임금이라는 단물만 빼먹고 경쟁력을 기르지 않은 탓이다. 대기업 노조는 해고가 싫다면서 임금과 일자리도 나누지 않는다.

성장률 1%대인 선진국들이 고용률 70%를 넘는데 성장률 3%대인 한국의 고용률은 65%에 불과하다. 경제성장 외에 사회적 협상을 통해 일자리를 늘릴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내년부터 정년 60세가 시행되고 통상임금이 확대되면 대기업 노조원만 혜택을 보고 청년들과 비정규직은 더 비참해질 것이다.

대기업 상위 10% 근로자의 임금을 3년간 동결해 그 재원으로 청년들을 더 많이 고용하고 협력업체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 같은 대안들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대기업 경영자들부터 자기 몫을 내놓고 공공기관들이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는 등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타협하지 않으면 다같이 망할지 모른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경제성장률#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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