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로버트 파우저]사직단 복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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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1월 말에 문화재청은 사직단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2027년까지 안향청과 전사청으로 구성된 핵심 부분인 제례 공간을 복원하고 그 이후에 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 종로도서관, 단군성전 등 공공시설이 있는 후원 부분에 대해 지역주민, 해당 기관 그리고 전문가와 논의하면서 복원 계획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작년 가을에 발표한 계획 초안에는 매동초등학교를 포함해 모든 공공시설이 철거 대상이 되었지만 지역주민의 반대로 수정됐다.

사직단의 복원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원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즉, 복원이 왜 필요한지, 누구를 위한 복원인지.

국제적으로 보면 복원에 대한 해석은 나라마다 다르다. 전쟁이나 정치적 혼란으로 파괴된 문화재를 원상태로 복원하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에서 그러한 사례가 많았다. 일본에서도 흥미로운 사례가 있는데 오키나와에 있는 슈리(首里) 성이다. 전쟁 피해가 가장 심했던 오키나와에서 류큐(琉球) 문화와 관련된 문화재가 거의 다 멸실되자 지역의 문화적 자존을 회복하기 위해 슈리 성의 일부를 복원했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전쟁으로 인한 파괴 외에도 복원은 국가 또는 지역 역사에 대한 자존심 회복과 깊은 관계가 있다. 미국 켄터키 주에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16대 대통령의 생가는 미국인에게 역사적 위인에 대한 자존심을 심어주기 위해 20세기 초에 복원된 사례다. 수도인 워싱턴에서도 링컨 대통령 기념관은 1930년대에 건립되었다.

최근에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모든 것이 상업적 목적으로 브랜드화하는 시대에 복원은 국가 또는 지역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복원한 문화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되면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갖게 된다. 복원 작업을 그 목적에 맞춰서 하는 사례도 쉽게 볼 수 있다. 한양도성 복원 계획이 그런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오키나와의 슈리 성 복원은 지역 관광산업 육성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사직단의 훼손은 일제강점기에 가장 심했지만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예를 들면 종로도서관이 1968년에 사직단 뒤에 현존하는 건물을 짓고 이전했다. 1979년에 아동열람실이 그 옆에 있는, 1956년 미국 원조기구의 지원을 받아 지은 서울시립아동보건병원 건물로 이사 갔다. 그 열람실은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이란 독립기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광복 이후의 훼손은 6·25전쟁 및 서울의 급성장을 반영한 것이다. 교통량이 늘어나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사직단 땅을 빼앗았고, 공공시설을 위한 땅을 확보하려고도 빼앗았다. 어떻게 보면 사직단의 훼손은 20세기 전통문화 훼손의 전시장인데 그 전시장을 없애고 복원할 것인지, 아니면 문화재를 외면했던 그러한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포용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남겨 주는 것이다.

사직단의 역사적 가치 및 그 회복을 존중하면서 20세기 서울의 역사, 나아가 ‘가까운 과거’의 추억이 담긴 공공시설을 애용하는 시민의 요구도 존중하고 배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가장 적합한 답은 2027년까지 제례 공간의 복원으로 매듭을 짓고 공공시설은 그대로 두어 사직단의 역사적 서사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질문도 하나가 남아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는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다음 각 호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 설립 이후의 유산의 가치를 인정하면 언젠가 문화재로 지정될 것이다. 6·25전쟁의 고통,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 그리고 민주화를 위한 희생, 각각의 가치를 인정하고 관련된 사람을 기념할 만한 유산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도 사직단 복원 논란은 조선 및 대한민국의 ‘가까운 과거’를 공존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재관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을 앞으로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남겨 준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문화재청#사직단 복원#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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