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105>‘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한국서 성공한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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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승용차로만 가득 찬 주차장에서 여자가 묻는다. “어떤 게 당신 차죠?”

남자가 대답한다. “전부 다.”

대학 졸업반 여성이 친구를 대신해 학교 신문 인터뷰에 나선다. 대상은 선배라는 억만장자, 그것도 나이가 스물일곱에 불과한 매력남이다.

이후의 스토리는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른 것만큼이나 뻔하다. 영화는 순수한 여자가 쿨하면서도 자상한, 그러나 기괴한 비밀을 가진 왕자님을 만나 소원을 이뤄가는 이야기다. 원작 소설이 해리 포터 시리즈보다 많이 팔렸다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다.

남성 관객이라면 소피 마르소의 젊을 때를 닮은 여자 주인공이 반갑다가도 남자 주인공이 비위 좋게 뱉어내는 대사들로 인해 치즈와 버터, 마가린 50가지를 입에 구겨 넣은 듯한 느끼함에 고통받을 가능성이 높다. 여성 관객의 예매율이 70%에 육박하는 데다 남성 중 상당수가 여자친구와 함께 보려고 표를 구입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 취향 영화임에 분명하다.

원작 소설 작가도 그렇지만 영화로 만든 감독 또한 여성이다. 특히 감독은 23세 연하의 꽃미남 배우와 결혼한 ‘능력 여성’이다. 그래선지 국내 드라마에서도 자주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의 피아노 연주 실루엣 같은 장면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성 관객들을 ‘진짜 확 깨게’ 만드는 대목이 있으니, 그가 원하는 게 낭만적인 사랑이 아닌 비밀 계약이라는 점이다. 번지르르한 말과 넘치는 돈에 여주인공이 농락당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심지어는 변태 행위까지…. 그 부분이 자라나 이야기의 중심을 장악하고 만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서구에선 상당한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학대당하는 내용에 오히려 매혹되는 여성들의 이런 심리에 대해 감정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현대 자본주의의 구조적 불안이 애정관계에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지배와 통제, 가학과 피학 같은 자극을 확실성으로 받아들여 불안에서 잠시라도 도피하려는 심리라는 것이다.

만일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도 흥행한다면 한국 여성들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를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이 품고 있는 일말의 불안감마저 확실함으로 바꿔주는, 예컨대 “네가 마음속으로 바라기도 전에 내가 알아서 다 해결해줄게” 같은 능력 말이다. 더구나 원작은 여자가 지순한 사랑으로 남자를 구원해낸다는 로맨틱한 결말이다.

한상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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