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같은듯 다른… 그들은 그때 왜 이걸 그렸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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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베꼈을까?/카롤린 라로슈 지음/김성희 옮김/276쪽·2만2000원·윌컴퍼니
“수십년 혹은 수세기 간격두고 나온 작품들의 혈연관계 밝히고 싶어”
그림들 간 계보 확인 위해 유사한 그림 주제 세개씩 묶어 편집

왼쪽부터 티치아노의 ‘필리포 아르킨토 추기경의 초상’(1558년),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1650년), 프랜시스 베이컨의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에 대한 습작’(1953년). 베이컨은 “색채의 아름다움과 그 밖의 것을 이용해 교황의 입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윌컴퍼니 제공
왼쪽부터 티치아노의 ‘필리포 아르킨토 추기경의 초상’(1558년),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1650년), 프랜시스 베이컨의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에 대한 습작’(1953년). 베이컨은 “색채의 아름다움과 그 밖의 것을 이용해 교황의 입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윌컴퍼니 제공
‘이거 어디서 봤는데.’

착각이 아니다. 미술관을 거닐다가 문득 이런 느낌을 받았다면 어느 땐가 정말 ‘그런 걸’ 본 거다. 정확히 같은 대상을 목격한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미술품 관람객이 기시감을 경험하는 까닭을 설명하는 준수하고 흥미로운 답변이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연구원 출신의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서문에 “수십 년 혹은 수세기의 간격을 두고 세상에 나온 작품들 사이의 혈연관계를 밝히고 싶었다”고 썼다.

“미술사는 르네상스 이후 신기원을 이룬 (또한 대부분 처음에는 물의를 일으킨) 형식적 혁신들의 도움으로 발전해 왔지만, 그건 결국 시대와 양식의 차이를 덧댄 반복의 역사였다. 앙드레 말로가 주장했듯 ‘예술은 형식으로 다른 형식을 정복하는 것’이며, 이런저런 형식을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그림들 간 계보 확인을 위해 유사한 주제를 다룬 그림을 세 개씩 묶어 각 장에 나란히 놓았다. 이렇게 배치한 편집 형식을 통해 이 책은 전시실 동선을 무료하게 따라다니거나 시대별 주요 작품을 돌림노래 부르듯 나열한 여느 미술서적과의 차별성을 확보했다. 대도시 풍경, 나폴레옹 초상, 오달리스크, 세례 요한의 잘린 머리를 받는 살로메, 메두사…. 캔버스에 담아낸 대상물에 따라 나뉘어 묶인 200여 점의 작품은 붓을 든 작가의 당시 속내에 한 발짝 더 다가드는 지름길을 제시한다. ‘그는 그때 왜, 어떤 계기로 이걸 그리려 했을까.’ 작가 한 사람에 범주를 한정해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화가들은 유사한 작품을 통해 시대를 가로질러 서로 논쟁을 벌이거나 경의를 표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밀레의 작품을 단순히 모사하려고 애쓰는 게 아냐. 다른 언어로 번역하려는 거지. 명암을, 색채로.”

주제를 잡아놓고 사례를 끌어모아 만드는 모든 텍스트가 그렇듯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내용도 적잖다. 10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그려진 얀 반 에이크와 티치아노,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대해 저자는 “팔을 난간에 올린 자세와 부푼 소매의 의복 스타일, 아무 특징 없는 배경 한가운데서 빛을 받아 도드라져 보이는 얼굴 등이 서로 닮았다”고 했다. 글쎄, 세 작가가 저승에서 이 의견에 동의할지는 의심스럽다.

작가의 모사 행위를 비판하거나 반대로 대놓고 베끼는 표절을 정당화한 책은 아니다. 조토 디본도네의 벽화를 본보기로 삼은 미켈란젤로, 제자들에게 다른 작품을 베껴 그리는 공부를 시킨 렘브란트의 이야기를 전하며 선배나 동시대 작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홀로 갇혀 작업을 해낸 작가가 있을 수 없음을 밝히려 했다. 그건 결국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 노력이다. 번역이 견고해 읽어나가기 수월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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