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정훈]간통죄와 김영란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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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사회부장
김정훈 사회부장
어제 김영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순간 불현듯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가 폐지 결정을 내린 간통죄에 대해 사법부 내에서 최초로 위헌 주장을 편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졌다. 추적해 보니 헌재에서 최초의 폐지 주장을 편 사람은 김양균 전 헌법재판관이다. 1990년 9월 헌재가 간통죄의 위헌 여부를 처음 판단했을 때 김 전 재판관은 소수 의견으로 위헌 주장을 폈다. 당시 김 전 재판관 외에 한병채 이시윤 전 재판관도 위헌 의견을 냈지만, 두 재판관은 간통죄를 징역형으로만 처벌토록 한 부분을 지적했을 뿐이다. 대놓고 “간통죄는 원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한 사람은 김 전 재판관이 유일했다.

법원에서는 그보다 두 달 앞서 34세의 젊은 판사였던 부산지법 김백영 판사가 직권으로 위헌 제청 신청을 해 간통죄에 첫 반기를 든 인사로 기록돼 있다. 이듬해 법복을 벗은 뒤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해 온 김 전 판사는 이번 위헌 결정 직후 “봄을 알리는 한 마리 제비가 되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필자는 이젠 78세의 나이로 고향인 광주에 낙향해 있는 김 전 재판관의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봤다. 수필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지내고 있다는 그는 “국가의 형벌권이 과연 어디까지 간섭해야 하느냐가 내 문제의식이었다”며 ‘불효막심죄’를 들어 설명했다.

“불효라는 게 윤리적,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형벌로 다스리지는 않잖아요. 불효막심죄를 만들어서 효도를 강요한다면 그건 효도가 아니죠. 간통죄로 정절을 강요한다면 그 역시 정절이 아니지 않으냐는 게 내 생각이었어요.”

당시 김 전 재판관은 ‘사생활 은폐권 침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사생활의 비밀에 속하는 행위를 국가의 공권력으로 단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이 되기 전 서울고검장 자리까지 20여 년간 검사로 일해 온 그가 국가의 형벌권이 과연 어디까지 작동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은 셈이다. 그는 “천하의 공권력이 그런 것까지 처벌하는 것은 촌스럽고 차원이 낮은 것이라는 게 내 소신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25년이 지나 간통죄는 압도적 다수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다. 김 전 재판관은 “당시 다른 재판관들에게 ‘지금은 내 주장이 소수지만 20년, 30년 후에는 반드시 내 주장이 다수가 돼서 간통죄가 폐지될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내 말이 맞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마침 ‘김영란법’이 화제가 되고 있어서 견해를 물었지만 그는 깊은 얘기는 피했다. 다만, “법망(法網)과 어망(漁網)이란 말이 있다”라고만 했다.

무슨 뜻일까. 다른 법조인에게 해석을 요청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고기 잡는 그물이 촘촘하면 잔챙이까지 다 잡힌다. 그러면 어부는 잔챙이를 살려줄 수도 있고 몽땅 잡아갈 수도 있다. 법망도 마찬가지다. 법망이 촘촘하게 돼 있으면 사회가 깨끗해질 것 같지만 법 집행자의 마음에 따라서 집행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게 된다. 더 큰 불공평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간통죄가 국가형벌권의 지나친 개입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것처럼 김영란법 역시 처벌 대상자가 과도하게 넓다는 점에선 간통죄와 비슷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위헌 시비에 휘말려 있는 김영란법은 간통죄의 운명을 뒤따를지도 모르겠다. 이는 순전히 김영란법 본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시간에 쫓겨 막판에 와서 법안을 난도질하고 누더기로 만든 여야 정치권과 국회의 탓이다.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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