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오일머니’ 경제성장 밑거름… 국가예산의 23% 해당 공사 따내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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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3월 1일부터 중동 4개국 순방]
‘제1 중동 붐’ 해외건설 역사

1970년대 현대건설이 지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4분의 1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로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동아일보DB
1970년대 현대건설이 지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4분의 1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로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동아일보DB
2000년대 후반부터 소비재, 보건의료를 중심으로 중동에서 한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중동 붐의 원조는 해외 건설이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라는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건설사들은 중동 진출을 통해 ‘오일달러’를 벌어들이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 역사는 19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면서 시작됐다. 중동 진출 초기에는 건설 사업들이 적자를 내며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하지만 1975년 정부가 ‘해외건설촉진법’을 제정하고 국가적으로 지원하면서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1976년 현대건설이 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공사는 한국 해외 건설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20세기 최대의 역사(役事)’로 불리는 이 사업의 공사대금은 9억30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4500억 원)로 그해 우리 정부 예산(약 2조 원)의 4분의 1에 해당했다. 당시 한국 외환보유액의 10배에 이르는 2억 달러의 선수금이 입금되자 고 박정희 대통령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이후 1970, 80년대 ‘1차 중동 붐’ 시기에 한국 기업들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잇달아 수주했다. 솜씨 좋고 부지런한 한국 근로자들에 대한 찬사가 중동 현지에서 이어졌다. 중동 건설현장의 한국 인부들이 ‘국민체조’로 하루를 시작했던 당시의 관행은 지금도 남아 이제는 현지 인부들이 국민체조로 건설현장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토목공사를 넘어 플랜트, 원자력발전소, 초고층빌딩 등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프로젝트로 영역을 넓혔다. 두산중공업은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담수화 플랜트(2001년), 현대건설·GS건설·대림산업은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 개발(2002년), 대림산업은 사우디 카얀 폴리카보네이트 프로젝트(2007년) 등을 수주해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2009년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국내 대표 건설사들이 한국전력과 팀을 이뤄 수주한 UAE 원전은 186억 달러(약 22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규모로 주목받았다. 특히 미국, 프랑스 등의 세계적 건설사들을 제치고 수주한 쾌거였다.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된 중동 건축물도 한국 건설사들이 짓기 시작했다. 삼성물산은 총 170층, 높이가 800m가 넘는 세계 최고층 건물인 부르즈 칼리파 타워를 2009년 완공했다. 2012년 한화건설이 건설사 단독 수주액으로는 최대 규모(80억 달러·약 9조 원)인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사업(주택 10만 채 건설)을 수주하기도 했다.

최근 중동 시장의 상황은 낙관적이지는 않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신규 발주가 잇따라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주력시장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UAE 카타르 등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던 시기에 이미 재원을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핵심 프로젝트의 발주를 계속할 것”이라며 “올해도 ‘건설 한류’를 확산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오일머니#경제성장#해외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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