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칼럼]甲질 진상은 공감 결핍 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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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오성우 부장판사는 ‘땅콩 회항’ 사건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있었더라면, 노예로 여기지 않았더라면, 타인에 대한 공공의식이 있었더라면 이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나부터 반성한다. 기자로서 알게 모르게 ‘갑질’ 많이 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죄인인데 ‘누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라며 물 타기 하려는 건 아니다. ‘땅콩 회항’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심하게 결핍된 그 무엇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바로 배려심이다.

요즘 세태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상류층부터 밑바닥까지 예의와 염치가 사라졌다는 거다. 보육교사는 보호해야 할 네 살배기에게 강펀치를 날리고, 서울대 교수라는 사람이 손녀뻘 제자들에게 성희롱을 일삼고도 잘못인 줄을 모른다. 40대 중견 부장판사와 욕설 막말로 점철된 댓글 달기가 취미인 누리꾼이 같은 사람이란 것은 놀라움을 넘어 현대판 ‘지킬과 하이드’를 연상시킨다. 조현아 못지않게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모습이다.

‘염치 실종’의 정점에 정치인이 있다. 총리 후보자는 ‘김영란법’을 통과시키겠다며 어린 기자들을 겁박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전직 대통령을 히틀러에, 현충원을 야스쿠니신사에 비유했다. 지난해 김현 의원은 대리기사에게 “너 나 누군 줄 알아?”를 외쳤다. 이 모든 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품성의 문제다.

이런 모든 일들을 예외적 사건이나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보기엔 빈도가 너무 잦고 정도가 심하다.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병이 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교육 선각자 인촌 김성수 선생이 살아서 지금 세상을 보면 통탄할 것 같다. 인촌이 꿈꾸었던 세상은 이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주 인촌기념회 동아일보 채널A 고려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개최한 심포지엄은 우리 사회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진단하고 그 원인과 해답을 교육에서 찾아보는 자리였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우리 사회의 ‘시민성(civicness)’ 부재를 들고 있다. ‘시민’은 국민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권력과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며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시민은 사익에 충실하면서도 자제와 양보를 통해 공익에 기여하는 존재다. 무슨 일만 생기면 남 탓을 하고 정부가 모든 걸 다 해결해주길 기대하는 사회에서 시민의식은 길러지지 않는다. 시민의식이 없는 사회에서 배려심은 나오지 않는다.

배려는 상대의 관점으로 바라보기에서 출발한다. 상대의 관점으로 바라보려면 상대방에게 공감해야 하는데 우리에겐 그 능력이 부족하다. 공감은 타인이 느끼는 감정, 특히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린 아기도 다른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따라서 운다고 한다. 공감능력은 타인의 행동을 따라하게 만드는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으로 생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타고난 공감능력이 없어진 데는 무한경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이 있다. 경쟁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양극화와 이념 갈등, 냉소주의 등 경쟁의 폐해와 한계도 살펴보자는 것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공감을 일종의 사회적 접착제로 규정했다. 공감 없이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세상의 말로는 공멸이다. 광복 70년 이래 교육 덕택에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 70년을 생각한다면 이런 획일주의 경쟁교육으로는 안 된다. 시민의식과 배려심, 창의성의 원천인 공감능력을 배양하는 일이 앞으로 교육의 화두가 돼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조현아#땅콩 회항#갑질#공공의식#시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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