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박근혜 회고록’이 나오는 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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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동아일보는 2013년 3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매주 토요판에 ‘비밀해제 MB 5년’이라는 제목 아래 이명박 정부 5년간의 비화를 연재했다. 정치부 데스크로 관여했던 필자는 김창혁 선임기자를 비롯한 취재진이 어렵사리 MB 정부 사람들을 추적 취재해 퍼즐조각 맞추듯 작성한 기사를 들여다보면서 전모를 가장 많이 알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보곤 했다.

막상 이명박 대통령이 2일 출간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펴보았을 때는 궁금했던 사안들이 적잖이 빠져 있어 조금 실망스러웠다. 가령 국정에 드리웠던 ‘형님’의 그림자와 측근들의 권력 사유화 갈등, 18대 총선 공천학살의 이면 등이 그런 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시간’은 언론인과 역사연구자들에게 소중한 사료(史料)요, 공적(公的) 자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부 자화자찬이나 대북·한중 관계에서 상대측이 불쾌해할 수도 있는 비사를 세세하게 공개한 건 썩 잘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랑은 묻어두고 참회로만 점철된 회고록, 외교 비사는 일절 덮어두고 시시콜콜한 일화나 신변잡기로만 채워진 회고록이 지금껏 있었던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에서 “2003년 2월 북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대북 공습을 할 것”이라고 중국 장쩌민 주석을 압박해 6자회담 동참을 이끌어냈다는 얘기를 공개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마이 라이프’에서 “중동 평화협상의 성사를 간절히 바라고 있던 아라파트가 북한 방문을 단념해줄 것을 간청한 상태였기 때문에 방북을 강행할 수 없었다”고 기록했다. 니키타 흐루쇼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회고록에서 “북한의 남침 계획은 김일성 정권 수립과 때를 같이해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毛澤東) 3자의 긴밀한 협의하에 추진됐다”고 증언했다.

회고록 출간은 대통령의 재임 기간을 세론의 비판과 역사의 검증대에 올려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MB 회고록을 놓고 삿대질할 일은 아니다. 세월이 흐른 뒤 이번에 못 담은 민감한 이야기를 보태 2권, 3권까지 나온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세종시 수정안 부결 관련 대목에 대해 “유감”이라 하고 남북정상회담 접촉과정 공개에 “우려”를 표하며 반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설사 전임 대통령의 당시 판단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판단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록되고 전해져야 할 역사요, 자료가 아닐까.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MB 회고록을 통해 우리는 5년 동안 집권했던 세력의 의식과 행동양식, 그들이 남긴 유산을 들여다보면서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논의할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임기를 마친 뒤 기억과 자료와 사람이 희미해지고 흩어지기 전에 꼭 회고록을 써줬으면 좋겠다. 청와대 대변인조차 주요 인사의 인선과 경질 배경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고, 대면보고 한번 못 하고 퇴임하는 수석비서관과 장관이 허다하다. 그 모든 의문부호에 열쇠를 쥐고 있는 당사자가 쓴 재임시절 회고록엔 MB 회고록보다 흥미진진한 뉴스들이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회고록’의 첫 장은 아마도 ‘집권 2년간 시행착오’라는 제목 아래 아래와 같은 세부항목들이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잇단 인사참사, 원인은 ○○에 있었다/김기춘 실장과 문고리 3인방 비서관에게 그토록 집착한 까닭은/민심 들을 기회인데 왜 나 홀로 밥 먹었느냐 묻거든/당대표 정례면담, 국회의원들과의 소통 막은 사람은/약속 파기 논란이 두려웠던 ‘증세 없는 복지’의 굴레….’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박근혜 회고록#대통령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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