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미석]소셜미디어는 분노를 싣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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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가공식품에서 이물질이 발견된 사고가 잇달아 요즘 일본 식품업계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를 겨냥한 웹리스크 감시대책 회사들이 등장했다. 식품회사를 대신해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소비자 고발이 올라오는지 24시간 꼼꼼히 살펴보다 문제의 조짐이 보이면 즉각 알려준다. 누구나 정보의 생산자 겸 소비자가 되는 소셜미디어 시대. 사실 여부를 검증할 틈도 없이 사회적 파장이 초고속으로 확산되는 ‘정보 전염병’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다.

좋은 정보든 나쁜 정보든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정보의 파급력과 파괴력은 폭발적이다. 지난해 여름 지구촌을 휩쓴 ‘아이스버킷 챌린지’ 열풍을 보면 알 수 있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겠다며 시작된 미국인들의 얼음물 뒤집어쓰기 이벤트가 페이스북을 창구로 해서 세계 각국에 들불처럼 퍼져갔다. 태평양을 건너 이 땅에도 자고 나면 연예계, 스포츠 스타와 정재계 인사들의 동참 소식이 소셜미디어에 줄줄이 이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는 며칠 전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 중 분노는 강한 전염성과 파급력을 갖고 있는데 최근에는 소셜미디어가 단순한 분노를 넘어 격분을 표출하는 곳으로 바뀌어 간다는 분석이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이름이 좀 알려진 사람들 중 단골로 선동적 글을 올려 세상의 분노지수를 치솟게 만드는 이들도 등장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슬픔의 감정은 홀로 삭이는 데 반해 분노를 느낄 때 보다 적극적으로 감정의 공유를 원한다. 갈수록 소셜미디어가 분노의 감정에 지배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심리에 있다는 것이다. ‘땅콩 회항’ ‘크림빵 아빠 뺑소니’ 등 한국 사회를 들썩인 사안들을 돌아보니 수긍이 간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성인 10명 중 3명이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고 답했다. 올드 미디어의 뉴스도 포함되지만 사적 의견이라도 쌍방향 소통을 통해 군중의 호응이 늘어나면 공신력 있는 뉴스인 양 둔갑한다. 대나무 숲에 가지 않고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마음껏 외칠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는 양날의 검이다. 소셜미디어가 사회적 병폐를 해결하고 억울한 약자를 돕기 위한 선한 도구로 쓰이는 것은 반갑다. 하지만 부정적인 이슈가 터지면 즉각 분노의 전방위 확산에 매진하는 누군가에게 무기가 되는 것은 두렵다.

종교를 가장한 무지막지한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는 요르단 공군 조종사를 산 채로 화형시키는 동영상을 그제 트위터에 공개했다. 참수에 이어 극단적 야만성으로 국제사회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테러리스트들에게도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가장 첨단의 도구가 쥐어진 셈이다. IS가 차별과 불평등, 소외 등으로 박탈감에 사로잡힌 전 세계 10대들을 끌어들이는 데 소셜미디어를 십분 활용한다는 사실이 새삼 걱정스럽다.

불경에 따르면 똑같은 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신선한 우유가 된다. 쉽게 들뜨고 덩달아 흥분하는 한국 사회, 소셜미디어의 위력을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쓰기 위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 같다. 온 사회가 지속적으로 분노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은 중병에 걸린 징조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사적인 분노를 공적 이슈로 만들려는 집단 히스테리에 편승해서 소셜미디어의 택배기사가 되기보다, 사실 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잠시 판단을 미루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뛰기 전에 생각할 것인지, 뛰면서 생각할 것인지, 뛰고난 뒤 생각할 것인지, 분노가 우리 사회를 완전히 잠식하기 전에 성찰해야 할 과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소셜미디어#아이스버킷 챌린지#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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