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재훈]통근 고통 줄일 ‘착한 SOC 투자’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재훈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수요그룹장
이재훈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수요그룹장
한국에서 국민으로 산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거비와 교육비가 높고 고용이 불안하며 근무시간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생활을 위해 매일 해야 하는 출퇴근도 예외일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통근시간이 23개 국가 중 두 번째로 길다. 통근시간이 길면 업무 효율에만 지장을 주는 게 아니다. 수면시간이 부족해지고 가정생활과 여가시간 활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OECD는 통근시간을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로 선정한다.

우리의 사회경제구조에서는 많은 직장인들이 장거리 통근을 할 수밖에 없다. 직장이 서울이라 해서 모두가 서울에 살 수 없다. 매매는 물론 비싼 전세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경기와 인천에 거주하며 서울로 통근하는 직장인이 그래서 124만 명이나 된다.

통근 거리가 길어서 겪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경기와 인천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직장인 중 66.8%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인내 가능한 시간(‘통근한계시간’) 이상으로 통근하고 있다. 통근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비율은 69.8%에 이른다.

그런데도 대중교통은 많이 부족하고 불편하다. 서울 주변의 도시 확장과 개발로 인구가 대폭 늘어났지만, 필요한 철도 등을 제때 건설하지 않은 결과다. 우리 수도권에는 프랑스 파리 수도권에 비해 2배 이상인 2500만 명이나 살지만, 지하철과 전철 연장은 파리 수도권의 2분의 1에 불과하다. 게다가 열차 운행 속도도 2분의 1 수준으로 느리다. 그러니 지하철과 전철은 ‘지옥철’이 되고, 광역버스는 서서 가는 걸 당연시해야 한다. 불편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대중교통 이용을 기피하고 승용차에 의존하니 도로에는 자동차가 넘쳐난다.

하지만 통근 고통 문제는 조만간에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토건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토건마피아, 토건국가도 모자라 토건망국론까지 나온다.

국민 일상에 필요한 사업에도 정부가 투자에 소극적이 되는 이유다. 물론 그간의 SOC 사업에서 과잉투자 등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업을 낭비적 토건으로 단정하는 건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나쁜 토건’이 있지만 ‘착한 토건’도 있다. 통근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편리하게 하는 것도 복지다.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적 약자를 위한 사업에는 투자를 해야 한다.

이재훈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수요그룹장
#통근시간#SOC#대중교통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