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신년 대통령 기자회견 아닌 담화라면 안 하는 게 낫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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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초 집권 3년 차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는 방식과 관련해 담화와 기자회견을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각계각층에서 선발된 패널들과 문답을 주고받는 ‘국민과의 대화’ 방식도 고려 대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자회견이 아닐 경우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할 것이다.

신년을 맞아 대통령이 새롭게 국정 각오를 밝히는 일이라면 가능한 한 가깝게 국민에게 다가가는 것이 예의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시작된 것도 1968년 박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다. 청와대가 미리 질문 내용을 기자실에 보냈고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평가해 달라” “북괴의 위협에 대비한 안보 태세 강화 방안은 무엇인가” 등 정권 홍보성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배당했지만 적어도 대통령이 담화문만 읽고 끝내진 않았다. 대통령이 일방통행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권위주의식 담화와 쌍방향 대화가 오가는 기자회견은 소통의 질과 감에서 천지 차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를 꺼린 편이다. 미국 대통령들은 월평균 2번꼴로 기자회견을 갖는다. 질문과 답변에 거리낌이 없을 만큼 형식도 자유롭다. 새 장관을 발탁하거나 교체할 때도 대통령이 직접 그 배경을 소개한다. 정치문화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부럽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은 유독 심할 정도로 기자회견을 마다하고 있다. 올해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이 취임 후 처음이자 지금까지 마지막 내외신 기자회견이었다. 청와대와 기자단이 미리 질문 순서와 질문 내용까지도 조율한다. 사전에 답변이 곤란한 질문을 걸러내고 대통령이 답변할 때 실수하지 않게 하려는 조치다. 이러니 기자회견 분위기가 딱딱해지고, 기자들은 각본에 없어 보충질문도 못하는 모습만 보이고 만다. 대통령이 국내외 모든 사안을 정확하게 다 꿰뚫고 있을 순 없다. 때론 말실수도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두려워 국민의 알권리를 대신하는 기자들 앞에 서는 것을 꺼린다면 정치 지도자로서 자격 미달이다.

올해 1년간 세월호 참사와 경제 침체 등으로 국민은 물론이고 박 대통령도 큰 시련을 겪었다. 연초 대통령의 다짐과 달리 성과를 낸 것도 별로 없다. 집권 3년 차인 새해는 임기 중 가장 힘차게 국정을 추진하고 구체적 성과를 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박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국민이 궁금해하는 일에 당당하고도 진솔하게 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도 대통령의 달라진 자세를 실감하고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신년#대통령#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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