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는 양극성 장애 환자? 현대 정신의학으로 진단해 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일 14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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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환이 안 나오시는 때는 인효가 통달하시어 거룩하심이 미진한 곳 없으시다가, 병환이 나오시면 곧 딴사람 같으시었으니, 어찌 이상하고 서러운 일 아니리요." (혜경궁 홍씨 '한중록' 중)
뒤주에 갇혀 27세에 숨을 거둔 사도세자를 '양극성 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는 정신의학적 분석이 나왔다. 사도세자의 정신질환 가능성은 줄곧 제기됐지만, 사료를 바탕으로 정신의학적 검토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김창윤 교수팀은 사도세자의 언행이 상세히 기록된 한중록,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적 문헌을 중심으로 당시 사도세자의 정신병리학적 상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사도세자는 조증과 우울증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양극성 장애로 진단됐다.

사도세자가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건 세자가 14세 때인 영조 25년경으로 추측된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으로 정무에 직접 관여하면서 영조와 점차 관계가 껄끄러워지던 시기다. 교수팀은 실제 사도세자가 13~14세(1748~1749년)부터 우울증상, 불안증상과 함께 환시 같은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된 것으로 파악했다. 17~19세(1752~1754년) 때는 쉽게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계증'도 간헐적으로 보였다. 실제 영조24년(1749년) 한중록에는 "처음에는 서운하고 섬뜩하신 것이 점점 성화가 되어서 우실 적도 계셨다." "늦은 밤에 정신이 어둑하시어 '뇌성보화천존이 보인다' 하시고 무서워하셨다" 등의 기록이 있다.

20~21세(1755~1756년)에는 자살 소동도 있었다. 우울증상과 더불어 흥미저하, 의욕저하를 보이며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기 시작했던 시기다. 당시 사도세자는 영조에게 혼이 난 뒤 '아무래도 못 살겠다'며 저승전 앞뜰에 있는 우물로 뛰어들려 했다. 교수팀은 "이같은 증상은 '우울증' 소견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시기 사도세자는 우울증과 함께 폭력적, 충동적인 경향도 두드러졌다. 특히 22세(1757년) 땐 그 공격성이 엽기적인 수준이었다. 하루는 당번 내관을 죽여선 머리를 잘라 들고 와 부인 홍 씨를 질겁하게 한 적도 있다. 교수팀은 "사도세자는 영조와 달리 성격이 온순하고 수용적인 편 이었다"며 "이같은 행동은 평소 성격에 기인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병적 상태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이후에도 사망 전까지 조증과 우울증 증상을 번갈아 보였다.

사도세자의 양극성 장애는 가족력도 한몫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양극성 장애는 가족력이 있을 때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는 우울증으로 자살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영조의 이복형인 경종도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숙종 또한 다소 감정기복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 사후에 기록한 것으로, 그 내용이 왜곡됐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사도세자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노론 측 홍씨 집안이 그들을 방어하기 위해 준비해둔 기록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교수팀은 "그럼에도 한중록엔 정신병적 증상에 들어맞는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는 편"이라며 "정신증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순전히 상상력을 동원해 기술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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