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가 없는 가을잔치 “난 TV로 응원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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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11월 12일 0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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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 스포츠동아DB
강명구. 스포츠동아DB
삼성의 한국시리즈 엔트리 27명을 살펴보면 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있다. 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익숙한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강명구(34). 삼성에만 있는, 특화된 대주자 스페셜리스트다. 통산 111도루를 기록 중인 그는 그동안 가을야구에서도 빠질 수 없는 ‘약방의 감초’였다. 삼성은 승부처에서 공식처럼 그를 대주자로 투입했고, 그는 단 한번의 시도로 도루를 성공해내곤 했다. 상대는 그가 뛸 것이라고 뻔히 알고도 당하기에 그의 존재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강명구는 가을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역사적인 장면도 많이 만들어냈다. 2004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는 뼈아픈 주루사를 기록하기도 했다. 7-8로 추격한 8회에 빗속의 역주를 펼치다 3루에 멈춘 선행주자를 보지 못하면서 2루와 3루 사이에서 런다운에 걸려 아웃을 당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2012년 SK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승부의 흐름을 장악하는 재치 만점의 주루플레이를 펼치기도 했다. 2-1로 앞선 7회말 배영섭의 안타 때 2루수 정근우가 가까스로 공을 잡는 것을 보고 3루를 돈 뒤 정근우의 송구가 3루로 향하는 사이 전광석화처럼 홈까지 파고들어 쐐기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가을, 그는 한국시리즈 무대에 없다. 경산볼파크에서 훈련하고 있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 앞서 연결된 전화통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아쉬움을 애써 감추려는 듯 오히려 더 우렁찼다. “우리 선수들 분위기 좋죠? 저는 이번에 덕아웃 대신 TV 앞에서 삼성의 우승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스프링캠프에서 이승엽의 강습타구에 머리를 맞아 중도귀국했고, 뇌진탕 증세로 두 달 가량 쉬다가 훈련을 재개했지만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9월 확대엔트리 때 1군에 호출될 분위기였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가 또 발생했다. 경산볼파크 숙소에서 훈련을 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발생해 쓰러지면서 이번엔 꼬리뼈를 다쳤다. 2003년 삼성에 입단한 그는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늘 삼성 벤치를 지켰지만, 이번엔 빠지고 말았다.

“한국시리즈에 앞서 열심히 준비는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올해 보여준 것은 없지만 혹시 누군가가 갑자기 부상으로 빠질 수도 있잖아요. 저를 찾았는데 제가 준비가 돼있지 않으면 더 속상할까봐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 앞서 훈련을 할 때 1군에 호출도 되고, 청백전도 뛰니까 ‘혹시나’ 하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엔트리에 제 이름이 빠진 순간 아쉽기는 했지만, 1년 내내 1군에서 고생한 다른 선수가 빠지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처음엔 속상해 TV도 안 보려고 했지만, 한국시리즈 하니까 저절로 TV 앞에 앉아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잠실|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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