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전 1승 9패… 아무도 절망하지 않았다

유재영 기자 입력 2014-11-08 03:00수정 2014-11-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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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2014 홈리스 월드컵 8일간의 도전기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2014 홈리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페어플레이 정신, 쇼맨십으로 각국 선수단과 칠레 현지 관중의 인기를 한 몸에 얻었다. 한국 대표팀의 최신영(왼쪽), 정종수 씨(왼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달 25일 덴마크전이 끝난 후 현지 중계진의 요청으로 즉석에서 ‘강남스타일’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의 춤으로 경기장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사진작가 김상준 씨 제공
처음부터 거리를 방황했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운동선수, 사업가, 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고 한때는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그들이 한데 모여 ‘2014 칠레 홈리스(Homeless) 월드컵’에 출전했다. ‘홈리스들이 무슨 월드컵에 참가한단 말인가….’ 주변에서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홈리스 월드컵은 무엇이며 대회 도중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암흑 같은 과거를 뚫고 나와 짧은 순간이나마 빛난 홈리스 월드컵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들의 절망은 어떻게 바뀌었나.

힘들었던 과거에 잠겨 웃지 못한 칠레행

“어디 끌려가세요?”

지난달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한쪽에서 똑같은 점퍼와 운동복 차림을 한 남성 8명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성이자 함께 공항에 나온 복지시설 관계자들이 농담 삼아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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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2014 홈리스월드컵(10월 19∼26일)에 출전하기 위해 모인 한국 선수들이었다. 홈리스 월드컵에는 알코올의존증, 약물 중독을 앓고 있는 이들이나 경제적 이유 등으로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출전한다. 축구 경기를 통해 이들에게 자활 의지를 북돋아주는 것이 이 대회의 취지다.

8명의 표정은 무거워 보였다. 미국 디트로이트와 애틀랜타를 거쳐 칠레 산티아고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내내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화도 끊겼다.

“막일을 하러 리비아에도 가본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아요.”

일용직 노동을 하다 자활 센터에 입소한 뒤 거리에서 잡지를 팔며 인생의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 박영현 씨(53)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때로는 제때 치료를 못해 심하게 손상된 앞니 두 개를 초조한 듯 문질렀다. 평소 말수가 적은 김귀현 씨(53)도 침이 마르는 듯했다. 김 씨는 건설 현장에서 철근 관리 일을 하다 경기가 나빠져 일을 잃고 가족과도 헤어졌다.

“젊은 시절엔 두바이에도 2년 다녀오고, 건설 일이 좋았어요. 그러다 일이 없어졌고 이후 술과 도박 탓에 이혼도 하고 아이들하고도 헤어지고….”

사람들은 늘 절망과 희망 사이를 걷는다. 그러나 때로는 절망스러웠던 기억이 너무나도 커서 자기의 인생에서 아예 희망을 배제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절망은 나의 힘’이라는 저서에서 절망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의 ‘공감’이라고 확신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8명이 한 팀이 됐지만 서로를 ‘공감’하기에는 어색했다. 막상 출국하려니 불안했다. 8명 모두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조차 힘들고 벅차 보였다. 비행기가 이륙해 머나 먼 타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연패에 웃고 세계를 품다

홈리스 월드컵에 참가한 한국 대표팀과 캐나다 대표팀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관중의 격려에 화답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상준 씨 제공
30시간가량의 비행과 대기 시간 끝에 지난달 19일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한 선수들은 입국 심사대 앞에서 모두 놀랐다. 다른 나라 선수단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는 남자 42개국 팀과 여자 12개국 팀이 참가했다. 남미나 유럽 팀 선수들은 대부분 20대였다. 동남아 국가 선수들 중에는 천진난만한 10대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한국 선수단은 30대 중후반 4명과 40대 1명, 50대 3명으로 이뤄졌다. 한국 선수들은 대회 분위기를 즐기는 각국 선수들을 처음에는 부러워하면서도 낯설어했다.

홈리스 월드컵 대표 선발을 주관하고 현지에서 대표팀 매니저로 선수단을 이끈 ‘빅이슈코리아’의 조현성 판매국장은 “칠레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우리 선수들은 스스로 투명인간이라 여기고 ‘나는 안 된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나라 선수단에서의 ‘홈리스’ 개념은 ‘노숙’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었다. 단순히 노숙인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일정한 주거가 없는 사람들을 모두 ‘홈리스’에 포함시켰다. 그들에게 홈리스 선수라는 타이틀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절망의 수식어도 아니었다.

밝은 표정의 각국 선수들을 보며 마음이 풀어진 한국 선수단은 곧바로 산티아고 시내 대통령궁(모네다 궁) 맞은편에 마련된 대회 특설경기장 앞에서 또 한 번 놀랐다.

경기장 바로 앞으로 3층짜리 대통령 궁이 보였다. 경호도 심하지 않았다. 사전 예약을 하면 집무실과 브리핑실 등까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선수들은 언제든지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대통령 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최신영 씨(33)는 “내 눈높이에서 가깝게 대통령 궁을 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어서 무척 좋다”고 말했다. 거리 어디에서든 행인들과 대회 자원 봉사자들은 선수들을 반겼다. 선수들은 이미 산티아고의 주인공이 됐다.

이곳에서 자신이 행사의 주인공임을 느끼며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입국 첫날을 보낸 선수들은 이튿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선수들을 이끈 이창용 코치는 “모든 자원 봉사자와 관계자, 행인들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선수들이 마음을 연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이 같은 심경의 변화 후 한국 선수들은 각국 선수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월드컵 개막을 알리는 거리 퍼레이드 행사에서 선수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거리를 누볐다.

홈리스 월드컵은 가로 22m, 세로 16m 규격의 경기장에서 팀당 필드 플레이어 3명과 골키퍼 1명이 가로 4m, 높이 1.3m의 골대를 두고 전후반 7분씩 득점을 노리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얼핏 쉬워 보이지만 작은 공간에서의 격렬한 몸싸움과 빠른 패스의 움직임이 필요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 한국은 조 추첨을 통해 북아일랜드, 헝가리, 스코틀랜드, 인도네시아, 노르웨이와 한 조에 편성됐다. 대표팀은 북아일랜드와의 첫 경기에서 2-12로 대패했다. 대표팀은 지난달 3일 서울 여의도에서 30여 개 자활센터 팀이 참가한 가운데 대표 선발전을 치렀다. 발을 맞출 시간은 열흘이 안 됐다.

‘젖 먹던 힘까지.’ 지난달 26일 홈리스 월드컵 마지막 날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 최신영 씨(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캐나다 팀 골문을 향해 드리블하고 있다. 한국은 캐나다에 3-6으로 패했다. 한국은 42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사진작가 김상준 씨 제공
대표팀은 예선 5경기에서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전패했다. 스코틀랜드에 1-8, 헝가리에 1-9, 인도네시아 1-14, 노르웨이에 2-8로 졌다. 하지만 선수들은 매 경기 신바람이 났다. 우승은 칠레가 차지했다.

만화가가 꿈이었던 박 씨는 축구 문외한이나 다름없었지만 상대를 끈질기게 막았다. 그는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듯 선수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그렸다. 한때 유도 선수였던 정종수 씨(37)는 화려한 춤사위와 쇼맨십으로 각국 선수단과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었다. 한국 경기가 끝날 때마다 정 씨가 ‘강남스타일’ 춤을 추자 이를 보려는 칠레 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바다에서 선원생활을 하기도 했던 정 씨는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세상과 등졌는데 칠레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됐다”며 웃었다. 정 씨는 넘어진 상대 선수들을 꼭 일으켜 세우고, 승리한 선수들에게도 반드시 엄지를 세워 보여주고 껴안았다. 각 팀 매니저 회의에서 조직위 책임자가 공식적으로 “한국의 정 씨는 경기에 져도 춤을 춘다. 진정 홈리스 월드컵 취지에 맞는 선수다. 본받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축구 실력이 발군인 최 씨는 매 경기가 끝나고 눈물을 쏟아냈다. 최 씨는 “져서 아쉽고, 못해서 미안하고, 실수해도 이름 불러주는 동료들을 보며 느낀 감동이 컸다”고 말했다.

이계환 씨(55)는 50대의 몸을 이끌고 골키퍼로서 무수한 슈팅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이 씨의 활약에 놀란 심판은 경기 후 자신의 호루라기를 선물로 건넸다. 알코올의존증으로 스스로 자활센터를 찾은 뒤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 이 씨는 이곳에서 눈부신 선방을 펼쳤다.

한양공고 재학 시절 전도유망했던 축구 선수로 활약하다 갑작스러운 척추 부상으로 운동을 접고 오랜 방황을 겪었던 김종영 씨(32)는 갑상샘암 말기로 의식을 잃고 생사를 헤매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뛰었다.

예선에서 전패했지만 한국 선수들은 예선 하위권 팀들끼리 다시 모여 치른 리그에서 스웨덴을 7-6으로 꺾으며 기세를 올렸다. 이후 잉글랜드와 캐나다, 덴마크, 캄보디아에 4연패했지만 값진 1승을 얻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이들의 선전은 칠레 현지 자원 봉사자들의 마음도 울렸다. 한국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국 선수단 지원을 자청한 히메나 씨(20·여)는 “오빠들, 최고”라는 말을 대회 내내 입에 달고 다녔다. 히메나 씨는 “밝은 표정의 이 오빠들에게 아픔이 있었나 싶다. 내가 오히려 위로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감사했다.

이번 대회에서 프로 선수 못지않은 발재간을 과시하며 칠레를 최종 우승으로 이끈 아구아요 자라 씨(24)도 한국 선수들의 열렬한 팬이 돼 박수를 보냈다. 17세부터 20세까지 마약 운반 일을 하다 지금은 치과 보조기구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자라 씨는 “한국 선수들을 보니 내 옆집 친구 같다”며 “한국 프로축구팀에서 불러주면 기꺼이 가겠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대회 기간 동안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공감’을 나눴다. 대회를 마친 이들이 스스로를 가두었던 어두움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건 이러한 ‘공감’의 치유 능력 때문인 걸까. 혹은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대회 분위기와 그 활력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이들은 떠나올 때와는 달리 미래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김종영 씨는 “혼수상태인 아버지에게 돌아가면 할 말이 생겼다. 살아갈 목표가 생겼다”며 감격했다. 서울 동대문에서 의류 사업을 하다 크게 실패해 나락으로 떨어졌던 차윤수 씨(37)는 “동대문을 편하게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시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조 국장은 “상황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의연하게 맞아들이고자 하는 진지함의 표현”이라고 그 표정의 의미를 해석했다.

선수단과 함께 월드컵 일정을 소화한 사회복지재단 ‘벧엘의 집’ 원용철 목사는 “돈 몇 푼 통장에 넣어준다고 해서 어려운 사람들이 일어서는 것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홈리스 월드컵. 그 짧은 경험을 통해 세상에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교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참가자 모두가 확인하고 싶어 했다.

산티아고=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홈리스#월드컵#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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