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삼성 고시 다양화, 대학교육 변화 이끌어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6일 03시 00분


삼성그룹이 20년 만에 신입사원 채용 제도를 크게 바꾼다. 필기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치르기 전에 전공능력을 평가하고, 직종별로 채용 방식을 다양화한다. 연구개발 기술 소프트웨어 등 이공계 분야에서는 대학 전공 이수 과목과 학점을 제출하고, 경영지원직과 영업직은 직무 관련 에세이를 쓰도록 했다. 삼성이 획일적 SSAT 비중을 줄이고 대학 전공과 창의력을 중시한다면 대학교육의 정상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부가 못하는 대학 개혁을 삼성이 이끌 수도 있는 셈이다.

1995년 삼성이 학연 지연을 배제하기 위해 도입한 SSAT는 많은 기업이 따라하면서 기업 채용 방식의 큰 흐름을 이뤘다. ‘삼성고시’가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 청탁도 통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해마다 20만 명이 넘는 응시자가 몰렸다. 2013년 전문대 포함 우리나라 대학졸업자 수가 55만여 명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다. 사설학원 난립 같은 부작용이 심해져 올해 초 대학 총장 추천제로 개편을 추진했으나 대학을 서열화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백지화했다.

삼성 측은 “출신 대학이나 해외 어학연수 경험, 자격증 등 직무와 관계없는 스펙은 반영되지 않는다”며 일반적 서류전형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무게로 볼 때 이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 인문계 학과에서는 “이공계 대학 졸업자에게 더 유리해졌다”는 불만도 나오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미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에서 이공계가 80%를 차지한다. 대학들도 기업 현장의 요구에 맞춰 구조개혁을 할 필요가 있다.

삼성이 창의성을 평가하겠다고 밝혔으나 창의성은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창의성 면접이나 에세이 쓰기가 새로운 학원 강좌 붐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교수 강의를 잘 받아 써야 학점을 잘 받는,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교육을 하고 있다. 삼성의 채용제도 개편이 전문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기업문화와 교육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차제에 대규모 공채라는 산업화시대 유물 같은 채용제도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삼성#채용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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