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천광암]청산 옆에서 땔감 걱정 안 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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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산업부장
천광암 산업부장
올 5월 말과 6월 초에 걸쳐 중국암웨이사(社)에 소속된 직원과 사업자 1만5000여 명이 단체관광으로 한국을 찾았다. 3000여 명씩 5차례로 나눠 방한한 이들은 제주도 부산 서남해안 등을 둘러봤다. 이들은 여수 엑스포장에서 공연과 함께 저녁식사를 즐기면서 5박 6일간의 일정을 마감했다. 식사 메뉴로는 갈비구이와 삼계탕이 나왔고 반주(飯酒)로 소주, 맥주, 복분자주가 제공됐다.

여기서 퀴즈.

Q. 이들이 일정 마지막 날 한 끼 저녁의 반주로 곁들인 순(純) 술값은 얼마일까?

정답은 2억4040만 원이다. 메인 메뉴를 포함한 총 식비는 40억 원, 개인 지출을 빼고도 회사 측이 단체관광에 쓴 직접경비만 238억 원에 이른다.

이어지는 퀴즈.

Q. 국제선과 국내선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서 여객 수가 가장 많은 항공노선은 어디일까?

정답은 김포∼제주 구간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모든 수학여행이 중단되고, 전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에 따라 국내 여행 수요가 궤멸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김포∼제주 구간이 여전히 북적거리는 데는 유커(游客), 즉 중국인 관광객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유커가 놀랍다. 먼저 ‘대수(大數) 효과’의 위력이 놀랍고, 씀씀이에 다시 한 번 입이 벌어진다. 관광업계에서는 “50대 중국 남성이 고가의 핸드백 가게에서 진열대 한 줄을 몽땅 쓸어 갔다” 등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유커의 통 큰 씀씀이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은 일본의 6분의 1에 불과하지만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관광하면서 평균적으로 쓰는 돈은 일본인들보다 2.3배나 많다.

명나라 때 문학자 능몽초가 엮은 소설집 초각박안경기에는 ‘청산(靑山)이 있는 한 땔감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지금 유커와 한국 경제의 관계가 딱 청산과 땔감이다. 유커 효과를 잘 활용한다면 ‘내수(內需) 불황’과 ‘일자리 기근’에 대한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다는 이야기다.

통계를 보면 연간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수는 2007년 100만 시대를 연 이후 4년 뒤인 2011년에는 200만 시대에 진입했고, 이어 2년 만에 400만 시대로 점프했다. 이런 기세는 앞으로도 이어져 6년 뒤인 2020년에는 방한 중국인 수가 1500만 명에 근접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유커 432만 명이 만들어낸 일자리는 모두 24만 개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단순 산술로 유커 1500만 시대인 2020년에는 83만 개 정도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계산이지만 이보다 훨씬 빨리 100만 개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방한 중국인 수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이들의 씀씀이가 커지는 속도가 2배나 빠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자세다. 한국의 관광 인프라는 지금의 유커 400만 시대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중저가 호텔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호텔 대신 찜질방에 중국인 관광객들을 몰아넣는 악덕 여행사까지 나온다. 다양한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먹는 중국인들의 식습관은 무시되기 일쑤다. 의자 대신 방바닥에 앉혀놓고 삼계탕 한 그릇 내주는 것으로 끝이다. 중국인들은 익히지 않은 채소는 잘 먹지 않는데 유커들에게 상추나 깻잎을 내놓는 식당이 대다수다.

중국의 해외여행 붐이 아무리 거세고 한중 간 거리가 가까워도, 잠자리 불편하고 먹을 것 없는 나라를 다시 찾으려는 유커는 없을 것이다. 400만 명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마이너스 구전(口傳)’의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청산을 옆에 두고 땔감 걱정을 하는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서둘러 자문(自問)해 봐야 한다. ‘한국은 유커들이 다시 오고 싶은 나라일까.’

천광암 산업부장 iam@donga.com
#암웨이사#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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