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진서]유병언과 유한책임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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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일요일 저녁, TV 뉴스에 국무조정실장의 브리핑 장면이 나왔다. 세월호 사고 수습에 들어가는 6000억 원 이상의 돈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가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휴일도 반납하고 사태 수습을 위해 애쓰는 공무원들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의문도 들었다. 유 씨뿐 아니라 주변인의 재산까지 몰수하는 게 과연 법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또 이게 판사나 검사가 아닌 국무조정실장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인가.

세월호를 운영한 청해진해운이 보상금을 낼 여력이 없으면 회사의 실소유주인 유 씨 일가가 대신 내야 한다는 게 일반 국민의 인식이긴 하다. 선례도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 때도 삼풍그룹 이준 회장 일가가 소유한 재산을 서울시가 받아내 피해자 보상금에 충당했었다.

하지만 법조계 사람 몇에게 물어보니 세월호 사고는 삼풍 때보다 복잡해서 특별법이 만들어진다 해도 100% 정부 뜻대로 진행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다. 유 씨 일가가 얼마나 경영에 참여했는지, 불법적으로 형성한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 또 서로 간의 재산 분배는 어떻게 했는지 등 밝혀내야 할 연결고리가 한두 개가 아니다.

만일 청해진해운이 유 씨의 개인사업체였다면 책임 소재가 말끔하게 정리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사업이 아닌 법인이라 일이 복잡해진다. 개인기업의 사주는 회사의 잘못에 무한책임을 지지만,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법인의 주주는 투자금액 이상의 책임은 지지 않도록 되어 있다. 대주주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유한책임’ 법인의 본래 취지는 선량하다. 시초는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청해진해운과 같은 해운업이다. 이 회사는 선박 사고 등으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더라도 주주들에겐 채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이런 안전장치 덕분에 투자가 몰려들었다. 경제사학자 로데베이크 페트람에 따르면 동인도회사에는 창립 주주 1143명, 자본금은 현재 화폐가치로 1300억 원이 모였다. 대성공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규모 있는 기업은 대부분 유한책임 법인 형태로 등록된다. 그런데 이 제도에는 주주가 악용할 수 있는 허점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바지사장’이다. 대주주가 바지사장을 앉혀놓고 회사를 주무르다가 정작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면 자신은 경영과 관련 없는 단순 투자자인 척하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도 문제다. 건물 붕괴 또는 선박 침몰 등 큰 사회적 피해를 낸 법인이 배상이나 보상을 못하고 파산해 버리면 그 뒷감당은 원칙적으로 주주가 아닌 국민의 부담으로 남는다. 법인 제도의 태생적 문제점이다. 이럴 때 국민이 믿을 건 정부의 감시감독뿐이다. 사고 수습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탈선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정치한 감독 시스템을 이번 기회에 꼭 만들어 줬으면 한다.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cjs@donga.com
#세월호#유병언#세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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