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치영]스마트금융 시대의 천수답금융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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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 차장
신치영 경제부 차장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작년 6월 중국에서 온라인으로 살 수 있는 펀드 위어바오(餘額寶)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은행이나 증권사에 가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다는 장점 덕택에 중국 투자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1년 만에 가입자 1억 명, 가입금액 5000억 위안(약 83조 원)이라는 경이적인 실적을 기록했다. KB국민은행 총자산(6월 말 현재 292조 원)의 28%에 해당하는 규모다.

2009년 독일에서 문을 연 피도르 은행은 지점이 없이 모든 거래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페이스북을 통해 계좌 개설을 신청받고 온라인으로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준다. 미국 구글은 휴대전화에 각종 신용카드를 저장해 사용하는 ‘구글 지갑’ 서비스를 2001년부터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보면 숨이 가쁠 정도다. 스마트폰 전자지갑에 내려받은 신용카드로 식사와 커피 값을 내고 인터넷으로 펀드에 가입한다. 스마트폰 메신저로 친구에게 송금을 하고 주식을 사고판다. 은행 지점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입출금을 하거나 증권사 지점에서 주식을 사고팔던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이른바 스마트금융의 시대다.

이런 금융거래 변화의 가장 큰 동력은 정보기술(IT)의 발달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의 확산은 은행 등 전통적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 간의 벽도 허물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회사들은 대규모 가입자들을 활용해 입출금, 송금, 결제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며 금융회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스마트금융은 한국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 은행 입출금 거래 10건 중 1건 정도만 지점 창구에서 이뤄진다. 카카오톡은 조만간 가입자들끼리 10만 원까지 송금할 수 있고 30만 원까지 물건도 구매할 수 있는 ‘뱅크월렛카카오(뱅카)’ 서비스를 시작한다. 머지않아 인터넷전문은행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렇게 금융시장의 판도가 급박하게 바뀌고 있지만 정부와 금융회사들은 구시대의 낡은 규제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면 거래가 급감하자 시중은행이 지난해까지 경쟁적으로 무인점포를 설립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한 곳도 설립되지 않았다. 은행 상품에 가입하려면 지점을 방문해 대면 절차를 거치도록 한 규정 때문에 무인점포를 찾는 고객이 없어서다.

인터넷으로 다양한 증권사의 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펀드슈퍼마켓이 도입됐지만 가입하기 전 우리은행이나 우체국에 방문해 계좌를 개설해야 하는 불편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톡의 뱅카 서비스는 1년 가까이 금융당국의 허가를 기다리느라 서비스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한 증권사는 위어바오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인터넷 판매의 가능성을 타진하다가 포기했다. 펀드에 가입하려면 지점을 방문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낡은 규제의 틀에 묶인 금융회사들은 천수답금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은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에 따른 이자마진에 목을 맨다. 증권회사들은 주식거래 중개수수료 수입이 줄자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카드사들은 경쟁사에 회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10년 후 금융회사들은 지금 상상도 못할 환경에 처할 것이다. 은행이나 증권사 지점이 사라질 수도 있다. ‘마른 논 앞에서 비 오기만 기다리는’ 금융회사들의 간판이 그때까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스마트금융 시대에 천수답금융으로 연명하는 회사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알리바바#중국 전자상거래#위어바오#스마트폰#스마트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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