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치영]대부업체 약탈에 우는 서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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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 차장
신치영 경제부 차장
25년 전 대학 다닐 때 일이다. 집안 사정으로 등록금 내기를 힘들어하던 같은 과 친구가 있었다. 말수가 적은 친구라 자초지종을 얘기하진 않았지만 가끔 점심값이나 차비를 내줘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어느 날 필자와 함께 강의실에 가던 그 친구는 건장한 체구에 얼굴이 험상궂은 서너 명의 청년들에게 멱살이 잡혀 끌려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친구는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몇 개월 뒤 학교에 다시 나타난 그 친구 손에는 휴학신청서가 들려 있었다. 부족한 등록금을 채우기 위해 사채를 빌려 썼다고 했다. 학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니 이자 갚기도 어렵다며 1년간 휴학하고 돈을 벌겠다고 했다. 그게 그 친구를 본 마지막이었다. 그는 결국 복학하지 않았다. 지방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만 들었다.

최근 대부업체들의 불법행위를 파헤친 동아일보-채널A 공동 ‘서민눈물탑 대부업체 대출 10조’ 기획 시리즈를 싣는 내내 그 친구가 떠올랐다. 생각이 곧은 친구였는데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시리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격정적이었다. “먹고살기도 힘든 서민들을 괴롭히는 악성 대부업체들이 이렇게 활개를 쳐도 되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동아닷컴에 실린 기사에는 대부업체에 대한 독자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댓글이 수십 개씩 달렸다.

요즘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대부업체들의 광고가 넘쳐난다. 도대체 그 많은 광고비는 어떻게 감당하는 것일까. 시리즈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했다. 대부업체 대출은 최근 수년간 점점 늘어 작년 말 10조 원을 돌파했다. 대부업체들을 주로 이용하는 고객은 1, 2금융권에서 대출받을 수 없는, 신용상태가 안 좋은 서민들이다. 대부업체들이 돈을 벌고 있다면 수년째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살림살이 팍팍한 서민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다는 얘기다. 얼마나 독하게 영업하기에?

취재팀은 금융감독원, 지방자치단체, 경찰 등을 통해 대부업체들의 영업실태를 파악했다. 아니나 다를까. 법정 상한선을 비웃는 약탈적 고금리, 불법적인 빚 독촉 등 대부업체들의 불법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연체대출로 시달리다가 대부업체 직원에게 다섯 차례 성폭행을 당한 50대 여성, 대부업체의 으름장에 떠밀려 회사 공금을 횡령해 대출을 갚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30대 회사원, 대출이자 몇 개월 치가 밀렸다는 이유로 매일 학교 앞에 진을 친 대부업체 직원들에게 시달리다 신경쇠약에 걸린 여대생….

사채업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연 100%가 넘는 약탈적 고금리와 ‘조폭식’ 채권추심의 폐해로부터 서민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2002년 대부업법을 제정한 지 12년이 됐다. 정부 의도대로 대부업체는 양성화됐지만 불법적 횡포와 약탈은 계속되고 있었다. 중소형업체나 미등록 대부업체들이 주범이지만 이름만 대면 아는 대형업체들의 불법행위도 적잖다.

서민들이 이렇게 고통받고 있지만 대부업체에 대한 정부의 감시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대부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권한은 지자체가 갖고 있지만 검사인력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대형업체에 대한 직권검사 권한을 가진 금감원도 인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자체를 관할하는 안전행정부는 대부업체 감독은 남의 일로 생각하고, 금감원은 대부업체의 불법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말한다.

힘없는 서민들이 기댈 곳은 정부뿐이다. 감독기관과 사법기관이 대부업체의 횡포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서민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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