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야, 내 새끼야, 꽃들아, 초록들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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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등 시인 69명 ‘세월호 추모시집’ 펴내
인세 전액-출판사 수익금 10% 기부… 24일 서울광장서 100일 추모회

4월 말 고은 시인은 경기 안산시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에서 자작시 ‘이름 짓지 못한 시’를 낭송했다.

‘이 찬란한 아이들 생때같은 새끼들을/앞세우고 살아갈 세상이/얼마나 몹쓸 살 판입니까//(중략) 분노도 아닌/슬픔도 아닌 뒤범벅의 시꺼먼 핏덩어리가/이내 가슴속을 굴렀습니다//(중략) 내 새끼야/내 새끼야/내 새끼야/꽃들아 초록들아’

세월호 희생자 추모 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실천문학사)가 21일 출간됐다. 세월호 참사 100일(24일)을 앞두고 나온 이 시집에는 고은 시인을 비롯해 도종환 박형준 이시영 함민복 등 한국작가회의 소속 시인 69명이 참여했다. 한국작가회의 김성규 사무처장은 “추모의 마음과 더불어 사건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록하자고 시인들이 뜻을 모았다”면서 “몇몇 시인은 정신적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다고 해 결국 참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시인들이 써내려간 시편마다 눈물이 흐르고 현실에 대한 분노가 타오른다.

나희덕 시인은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여라,/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주었더라면/몇 개의 문과 창문만 열어주었더라면/그 교실이 거대한 무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난파된 교실’)라고, 강은교 시인도 ‘어른들은 나를 두고 가버렸어요/이제 나는 떠나가요/나는 지금 어둠 속에 눈 꼭 감고 있어요/파도에 결박되어’(‘딸의 편지’)라고 안타까워한다.

박철 시인은 ‘슬픔으로 가다 다시 분노가/냉정으로 가다 다시 분노가/체념으로 가다 다시 분노가/용서로 가다 다시 분노가/사랑은 바닷속에 처박히고/사랑을 바닷속에 처넣고서/이제 누가 사랑을 이야기하겠는가’(‘이제 누가 사랑을 이야기하겠는가’)라고, 김선우 시인은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 있다/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라고 고개를 떨군다.

장석남 시인은 ‘차를 마시다니/꽃이 피다니//목구멍으로 무엇을 넘기다니/꽃을 보다니’(‘차를 마시다니’)라고, 공광규 시인은 ‘이런 눈물과 우울의 봄날/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출근하고/친구를 만나는 것도 미안한 시간이다/나들이도 죄가 되는 시간이다’(‘노란 리본을 묶으며’)라고 참담한 나날을 고백한다.

시인들의 인세 전액과 출판사 수익금의 10%는 아름다운재단 ‘기억 0416 캠페인’에 기부된다. 이 캠페인은 참사를 기록하는 시민아카이브 구축, 사회복지사의 유가족 방문, 장기 치유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모금을 추진한다. 24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과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에는 강은교 김기택 함민복 시인 등이 참여한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고은#박형준#나희덕#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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