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은수]교황도 오는데, 달라이 라마도 왔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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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불교계에서 드디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5일 스님 등 불교계 인사들이 모여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 선포식을 갖고 그동안 방한에 필요한 비자 발급을 거부한 정부 측에 항의하며 방한을 허용할 것을 요구하기로 한 것이다. 추진위에서는 전국을 순회하면서 법회를 열고 서명 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이전의 방한 초청 노력이 티베트 불교의 수장이자 세계적 불교 지도자를 초청하는 불교계 내부 행사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에는 불교인을 넘어 지구촌에 평화와 위안을 가져다주는 이 시대의 영적 정신적 지도자를 초청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달라이 라마 방한의 의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재 세계적으로 거대한 정신문명의 기류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정작 한국 사회에서는 전통 사상과 문화로서의 불교의 자취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반면에 서구 사회에서 불교의 존재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전통 종교로서의 불교가 주는 무게감에서 벗어나 오히려 한국으로 역수입되어 온 서구의 불교 해석 속에서 신선한 삶의 가르침과 메시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얼마 전 런던을 여행하고 돌아온 지인이 런던 중심가에서 불교에 심취한 지식인들을 만났다며 놀라워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는데 이처럼 불교는 이제 서구 문화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미국과 유럽 사회의 중심부에 불교가 알려진 것은 실존적 허무주의 속에 빠져 있던 1950년대 청년들부터였지만 이미 19세기 인도 식민지 지배 등을 통해 서구 지식인들에게 알려졌다.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저술에도 불교에 대한 철학적 평가가 담겨 있다. 20세기 초 미국에 불교를 소개한 주인공은 일본인 승려 스즈키 박사였다. 그는 왕성한 저술 활동을 통해 전통적 선(禪) 불교 가르침을 철학적 담론으로 재해석하면서 이성적 사유를 넘어선 직관과 통찰의 가치를 주장하고, 자신의 실존과 대면하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깨닫는 방법으로 선 불교를 소개했다.

선의 일본식 발음 ‘젠(Zen)’이 불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유행된 것도 스즈키 박사 때문이다. 그는 영어의 언어 사용에서 고양이가 자기 몸의 일부인 다리를 ‘소유(have)’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을 모순이라고 하면서 이런 ‘have’적 상상력이 소유적 사고를 낳고 나아가 주체와 객체, 소유하는 자와 속한 자를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고착시킨다고 주장했다. 스즈키 박사의 철학은 서구의 정신문명을 고찰하는 대안적인 철학으로 불교의 인기를 몰고 왔다.

그를 통해 소개된 불교가 서양사회에 활짝 꽃피게 된 계기는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점령을 피해 인도 등 세계 각지로 흩어져 망명생활을 하게 된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이 서구 사회로 건너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동양의 정신세계에 대한 지식과 수행법을 서양문화에 맞게 가르쳤다. 규격과 경쟁의 사회 속에서, 자신을 휘몰아치는 욕망과 불안의 파도 속에서, 인생의 가치와 삶의 목표를 뒤돌아보라고 했다. 많은 뛰어난 스승들이 배출됐고 수많은 삶의 지침서들이 쓰였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이 바로 달라이 라마이다.

이전까지 서구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은 기성 사회와 문화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하는 일부 지식인층에 한정되었으나 지금은 중산층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수십 년 전에 깨달음과 영적 세계를 추구하여 인도에 갔던 스티브 잡스의 관심과는 또 다르게 지금 서양 중산층들은 가족의 틀을 존중하고 부모로서 육아, 교육의 관점에서 불교에 관심을 갖는다. 아이들에게 명상 코스를 듣게 하고, 절에서 주관하는 가족 여름 캠프에도 참가하는 게 일상에 파고들고 있다. 나아가 전쟁 종식이나 환경과 생태 보호 같은 사회적 이슈들에도 큰 목소리를 내면서 자유 경쟁과 시장논리에 함몰되어 가는 인간성과 물신주의 등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들에게 불교란 종교를 넘어서서 새로운 가치체계라고 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종교적 교세의 문제로 접근하거나, 정치적 논리로 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올해 교황 방한에 이어 내년 달라이 라마 방한이 성사되어 종교계가 화합을 도모할 수 있기 바란다.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방한#달라이 라마#교황#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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