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용석]해경을 없앤다고 달라지는게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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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관료들에게 어떤 출신의 장관을 선호하는지 물어보면 대략 이런 순위로 답이 나온다. ①정치인 ②관료 ③기업인 또는 교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선호도는 관료 입장에서 보는 갑을(甲乙)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관료에게 정치인은 갑이고 기업인, 교수는 을이다. 예산을 따내거나 법을 만들 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치인 출신을 선호하는 반면, 관료가 규제나 정책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인이나 교수 출신은 꺼린다는 것이다. ‘기왕 낙하산이 올 거면 좀 센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는 은근한 바람에는 결국 갑을 상대로 문제를 푸는 데는 갑 출신이 특효약이라는 전략적 사고가 숨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 하나. 국책 연구원 출신은 아예 거론도 안 한다는 점이다. 고위 관료가 부하에게 일을 시키면 국책 연구원이 그를 돕는다. 부처는 관련 연구원의 살림살이나 인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심하게 말하면 하청업체 또는 자회사다. 이렇게 힘없는 ‘을의 을’ 출신 장관이 여러 명 앉아 있으니 박근혜 정부의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중앙부처의 한 서기관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차관과 1급 실장은 물론이고 국장들 인사까지 다 청와대가 관여합니다. 예전 정부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어요. 조직원에겐 인사권자가 갑이죠.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을’ 장관과 국장만 쳐다보면서 일에 매진하겠습니까.”

어느 사회나 갑을이 있지만 우리는 좀 심한 편이다. 평등한 계약관계가 아닌 수직적인 역학관계에서 일을 하는 데 익숙해서다. 이런 ‘갑을사회’의 진짜 문제는 ‘한 번 갑은 영원한 갑’이라는 데 있다. 자연스럽게 갑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퇴직관료가 여전히 ‘관피아’의 이름으로 갑을 유지하는 까닭은 그의 편을 들어주는 ‘조직의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피아의 힘은 개인의 능력이 아닌 조직과 배경의 힘이다.

해경이 단박에 간판을 내리게 된 반면 안전행정부는 끈질기게 권한을 주워 담는 모습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은 이를 합리적인 정부의 개혁 과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파워게임의 결과로 본다. 재난 현장을 모르는 상급자가 지휘봉을 들고, 현장의 전문가는 입을 다문 채 지시만 기다리거나 책임을 위에 미루게 만드는 그 파워 말이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로 2500여 명이 희생되는 과정에서 무능과 비리, 온갖 적폐를 드러냈다. 청장은 갈렸지만 FEMA가 해산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산이 늘어났다. 카트리나의 실패를 고스란히 경험으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FEMA는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몰려왔을 때 정확한 대처로 명예를 회복한다.

해경의 해체가 이번 사고로 얻은 아프지만 소중한 경험을 공중에 날리는 결과만 빚지 않을까 걱정이다. 힘이 약한 조직의 처참한 말로로 기억되면서 ‘그러니 힘을 키워야 한다’는 엉뚱한 교훈만 남기지 않을까 두렵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새로운 기관과 그 조직을 맡을 ‘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사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확한 지식과 직업적 사명을 갖춘 전문가가 권한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완전한 갑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국민의 안전은 해경을 해체한다고 실현되는 게 아니다. 해체시켜야 할 것은 일을 해야 할 사람에게서 권한을 빼앗는 한심한 갑을 문화다.

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nex@donga.com
#해경#안전행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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